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동양일보]윤석열 대통령이 대학에 입학할 때 아버지로부터 선물 받은 책이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다. 이 책의 논지는 한마디로 경제는 시장에 맡기고 정부는 나서지 말라는 거다. 프리드먼은 정부는 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공적 기능만 유지하고 민간의 자율과 창의를 침해하지 말라는 자유주의 경제학을 전파한다. 이것이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이래 지금까지 외쳐온 자유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현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공기업 자산을 대량으로 매각하고 정부의 규모를 줄이며 과감한 감세 정책으로 체질을 전환했다. 연구개발예산을 대규모 삭감하고 서민 약자와 청년, 장애인 관련 예산도 삭감했다. 윤 정부의 자유란 정부의 권한을 시장으로 넘겨주는 작은 정부와 큰 시장을 뜻한다. 작년에 56조원에 이르는 대규모 세수 결손과 복지 축소도 자유를 위한 조치였다.

그런데 지금 총선을 앞두고 벌어지는 일은 뭔가. 윤 대통령은 가덕도 신공항, 대구 신공항, 서산 민간공항을 짓겠다고 했다. 이미 지방 공항은 포화 상태인데도 말이다. 그러나 작년 새만금 잼버리 실패로 미운털이 박힌 전북은 새만금 공항 이야기가 쏙 빠졌고 사업예산 절대액도 줄였다. 대도시 철도 지하화, 트램 및 광역 철도 확장, 지하철 노선 연장 등 전국이 철도 천국이 되었다. 청년 목돈 마련 지원과 연구자 생활지원금 확대, 중소 자영업자 이자 부담 경감도 나온다. 내년에 정부 연구개발 예산은 획기적으로 증액하겠다고 했다. 서산의 한국형 실리콘 밸리, 대구의 첨단 부품 산업단지, 광주의 첨단 복합단지가 나왔다, 구리와 김포, 고양의 서울 편입도 나온다. 북한 핵 위협에 대비한다며 천문학적 규모의 무기체계도 개선한다. 작년부터 제시한 300조원의 투자가 소요되는 평택 반도체 클러스터는 어떠한가. 이런저런 대통령의 사업 공약을 다 합치면 우리나라 1년 예산의 두 배에 달하는 970조원의 정부 투자가 소요되는 규모다. 여기에다 공항 이전과 반도체 클러스터 등에 투자될 민간 자금까지 합치면 그 규모는 1500조 원에 달할 것이다. 앞으로 재임 기간 정부 예산을 획기적으로 증액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들이다.

그렇다면 이제까지 말한 자유는 어디로 간 것인가. 윤 대통령이 선거를 앞두고 쏟아내는 말들을 보면 작은 정부는 오간 데 없고 가장 덩치가 큰 초대형 정부가 해야 할 일들이다. 정부가 모든 사업을 장악하고 뒤흔드는 중국 같은 나라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들이다. 황당하게도 이런 공약을 쏟아내면서도 윤 대통령이 여전히 자유를 외친다. 이 공약들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린벨트와 군사보호구역까지 무력화했다. 다가올 국회의원 선거에 이기고 싶은 마음이야 십분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어떤 정부도 꿈꾸지 못했던 대규모 개발 공약을 제시하며 여전히 자유를 외치고 있으니 이건 너무한 거 아닌가. 이렇게 언어와 개념이 자의적으로 남용되면서 논리의 엄밀성이나 정책의 책임성 같은 것은 안중에 없는 듯하다. 선거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포퓰리즘이 아닌가.

선거 결과가 어떻게 나오더라도 그 이후가 더 걱정이다. 가뜩이나 침체된 우리 경제에 이런 선동적 포퓰리즘이 휩쓸고 가면 나라가 거덜난다는 게 상식이다. 우리는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에서 이미 그런 현상을 목격했다. 과거에 우파가 좌파를 공격할 때 포퓰리즘이라고 했는데, 이제는 우파가 그런 공격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개발의 포퓰리즘이 범람하면서 막상 정부가 해야 할 교육과 노동, 연금 개혁은 입에 올리지도 못하고 있다. 병을 치료하지 않고 마약성 진통제만 놓겠다는 심산이다. 지금 고갈되고 있는 한국 사회의 활력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제한된 자원이라도 인간 능력 개발과 삶의 질을 향상하는 데 쓰고, 나머지는 개혁을 위한 비용으로 사용해야 한다. 그 시기를 놓치고 있지 않은가.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