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대한민국에서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 하는 것은 자신의 존재감 표현과 취업·승진·성취 등에 있어 여전히 뿌리 깊은, 피할수 없는 ‘평가의 잣대’ 역할을 한다. 오죽하면 대입을 준비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이 ‘인 서울’을 입에 달고 살까.

명문대에 가는 것을 탓할수도 회피할수도 없는 현실적 사정 다음에 우리가 사회적으로 반드시 마련해야 하는 중요한 토대는 기회의 공정성이다. 그것이 명료하면 학벌사회를 무조건 나쁘다고 비난하지도 않는다. 젊은이가 잘 배워야 사회발전을 위해 뭔가라도 할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배움의 노정에 공정성이 훼손 됐다는 사실과 마주했다. 학생들은 돈 없는 부모를 탓 할수 없어 속상하고, 믿었던 스승이 그랬다는 사실에 서글퍼진다. 학부모들 역시 그저 분노하고 울화통 터질 뿐이다.

감사원은 최근 일선학교 교사들에 대해 감사를 벌인 결과 현직 교사 27명 등 56명을 수사 요청했다고 밝혔다. 교사들이 문항 공급조직을 만들어 사교육 업체와 거액의 거래를 조직적으로 했다는 것이다. 사교육 업체에 팔아넘긴 문제를 자기 학교의 내신 시험에 출제한 교사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수능과 수능 모의평가 위원으로 참여했던 한 교사는 다른 교사들과 함께 모임을 조직해 모의고사 문항 2000여개를 만들어 사교육 업체와 유명 학원강사에게 팔고 그 대가로 6억6000만원을 받은 사례도 밝혀졌다.

EBS 교재가 수능 출제와 연계된다는 점을 악용해 교재 출판 전에 교재 파일을 빼돌린 후 비슷한 문항을 만들어 학원 강사와 뒷돈 거래를 한 교사도 있었다.

소위 ‘킬러문항’이라는 말까지 만들어 우리들 입에서 회자되게 한 여러 정황이 적나라하게 확인된 것이다.

지난 2023학년도 수능 영어 문제 하나는 미국 모 대학 교수의 저서에서 발췌됐다는 폭로가 나왔고, 수능 직후 이 지문은 모 학원 강사가 제공한 사설 모의고사 지문과 거의 동일하다는 주장이 빗발쳤다.

학생들은 항의했고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우연의 일치’라며 맞섰으나 이런 유형의 문제점들이 발생하는 이유를 살펴봐야 한다.

2016년 수능 모의평가 국어 영역에선 유명 강사가 수강생들에게 알려준 내용이 그대로 출제된 적도 있었다.

일타강사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인 것이다.

학생들은 소위 킬러문항을 풀기 위해, 혹은 한문제라도 더 맞히기 위해 학원수강을 기필코 해야만 한다. 그건 고가의 사교육비로 이어져 학부모들의 부담을 엄청나게 만든다.

사교육 광풍은 대한민국이 처한 모든 사회문제의 뿌리다. 아이를 안 낳는 이유 중 하나도 거기에서 찾는게 빠르다.

이번에 적발된 교사들의 문제 판매 행위가 빙산의 일각일지 모르기 때문에 감사원과 교육부는 학교와 학원, 교사와 학원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교육 카르텔의 뿌리를 찾아 발본색원 해야 할 것이다.

양심껏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이 더 이상 좌절하지 않게, 그리고 묵묵히 아이들 가르치는 일에만 전념하는 대다수 교사들을 욕보이지 않게 해 달라.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