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연기 한국교통대 교수

홍연기 한국교통대 교수

[동양일보]1979년 문교부(현 교육부)의 1980학년도 대학 입학 정원 조정에 따르면 대학 총 입학 정원 116,900명 중 인문계열은 59,075명, 자연계열은 57,825명으로 인문계열이 자연계열 정원을 초과하였다. 당시 문교부에서는 우리나라의 산업 구조가 1차 산업에서 3차 산업으로 발전함에 따라 전문·기술 인력과 행정·관리직 요원이 많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였고 같은 시기 한국교육개발원에서는 대학 입학 정원의

계열별 구성비를 1986년 인문계열 67%와 자연계열 33%, 1991년 인문계열 74%와 자연계열 26%가 적정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이로부터 40여 년이 지난 2023년 한국교육개발원의 통계에 따르면 2013년 인문사회계열의 정원은 133,215명에서 2022년 106,692명으로 20%가 감소했지만, 공학계열의 경우 같은 기간 84,560명에서 90,244명으로 증가하였다. 또한 학과의 경우 동기간 4년제 대학 기준 인문계열은 50개의 학과가 신설되고 76개 학과가 폐과되었지만, 공학계열은 556개 학과가 폐과되는 동안 820개 학과가 신설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어문계열은 심각한 상황이어서 영어 관련 학과가 51개, 중국어 36개, 일본어 27개, 러시아어 10개 등이 통폐합되거나 폐과되었다. 이는 어문계열을 포함한 인문사회계열의 전임교원 수의 감소와 함께 대학원생의 감소로 이어져 학문 후속 세대 양성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와 사회의 불확실성에 따른 취업 중심의 학과 선호와 더불어 첨단산업 중심의 정부의 대학 지원 정책으로 인해 대학 내 인문학의 입지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인문학이 부실해진 대학이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할 수 있는 인재를 바르게 기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심각한 회의가 든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때 인문학은 대학 지성을 대표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인문학 위기를 과학주의로 대표되는 과학의 오만함과 배타성, 기술 중심 사회로의 급격한 변화만을 탓하는 일부 인문학자들의 과학기술에 대한 몰이해와 자성 부족이 지금의 인문학 위기 상황과 무관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대학 인문학의 위기는 지나치다. 대학(university)의 근원적 모습인 보편적인 학문 공동체를 지킴으로써 사회가 건강하게 유지되려면 대학에서 학문의 두 축인 인문학과 과학기술학이 균형 있게 유지되어야 한다. 산업혁명의 중심에 있던 19세기 당시 영국의 추기경이면서 대학 교육 사상가였던 존 헨리 뉴먼은 지금도 널리 읽히고 있는 ‘대학의 이념(The idea of a university)’이란 저서로 유명하다. 뉴먼은 ‘대학의 이념’에서 대학은 보편적인 지식 즉, 특정 분야에 국한된 개별적 전문 지식이 아닌 다양한 학문이 포괄적으로 결합 된 최고 수준의 교양을 가르쳐야 하고 이러한 과정을 자유교육(liberal education)이라고 하였다. 19세기 산업혁명 시절과 지금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차이가 있어 지금 시점에서 뉴먼의 자유교육 이념이 이상적인 관념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뉴먼의 자유교육은 교양(liberal arts)이란 이름으로 여전히 대학 교육의 근간이 되고 있으며 이종 학문 간 융합의 기본인 여러 학문 간의 원활한 의사소통과 협업을 위해서 여전히 유효하다.

기술 발전에 따른 사회 경제적 변화가 급속한 지금, 대학 교육의 실용적 가치는 중요하다. 지식의 유용성보다는 지식 자체인 자유 지식 함양을 강조했던 뉴먼이었지만 뉴먼이 말하고자 했던 지식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와 이를 통한 사람의 품성을 키워야 한다는 자유교육의 정신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하겠다.

인문학이 없으면 자유교육이 있을 수 없고 자유교육이 없으면 지금의 기술사회에서 요구하는 융합도 사회의 윤리성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대학 교육에 있어서 인문학은 보존해야 할 학문도 육성해야하는 학문도 아닌 대학 사회의 건강함을 위해서는 당연하게 존재해야만 하는 학문이기에 대학을 중심으로 한 지금의 인문학 위기는 몹시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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