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식 세명대 교수·시인

이창식 세명대 교수·시인

[동양일보] 신경림(申庚林: 1936~)의 '안의 장날'시는 소외된 민중의 고달픔을 다루고 있다. 시 문면에는 따뜻하고 잔잔한 인정을 바탕으로 감동을 주고 있다. 남녀 사이에 얼굴을 대하지 않는 관습조차 부질없을 정도로 함께 늙어가는 처지의 안사돈과 바깥사돈이 장날에 만나 뜨끈한 장국밥을 먹는다. “험하게 살다 죽은” 이의 ‘험한’ 사연인데 한쪽은 아들을, 다른 쪽은 사위를 잃은 이들의 사연이 역사적 질곡과 관련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민족 현실과 관련한 시집의 성격에서 비롯한다. 90년대 "더없는 욕"이었던 삶을 살아가는 노년이라면 광복은 물론이고 6월 민족상잔을 경험한 인물들이다.

산나물을 한 소쿠리 다 팔고/비누와 미원을 사 든 할머니가/늙은 마병장수와 장국밥을 먹고 있다/한낮이 지나면 이내 파장이 오고/이제 내외가 부질없는 안팎사돈/험하게 살다 죽은 사위/아들의 얘기 애써 피하면서/같이 늙는 딸/며느리 안부만이 급하다/손주 외손주 여럿인 것이 그래도 대견해/눈물 사이사이 웃음도 피지만/누가 말할 수 있으랴 이토록/오래 살아 있는 것이 영화라고/아니면 더없는 욕이라고-신경림 '안의 장날'

신경림은 충북 충주의 특성을 가장 잘 형상화한 ‘민족시인’이다. 그는 1936년 충주시 청안면 청룡리 88번지에서 출생하여 동국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후 시인 활동을 하였다. 충주에서 성장하여 동국대학교 영어영문과를 졸업하였다. '문학예술'에 시 '낮달', '갈대' 등이 추천되면서 문단에 등단(1956년)하였다. 등단 직후부터 몇 년 동안은 창작 활동을 중단하기도 했지만, 1965년부터 창작 활동을 재개하면서 민요기행을 통해 민중적 정서를 되살리는 등 한국시단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다.

주요 책에는 시집 <농무>, <새재>, <길>, <달넘세>, <쓰러진 자의 꿈> 등과 장시집 <남한강> 등이 있으며, 평론집 <문학과 민중>, <삶의 진실과 시적 진실>, 산문집 <바람의 풍경>, <민요기행>, <시인을 찾아서> 등이 있다. 만해문학상(1회, 1974년), 한국문학작가상(1981년), 이산문학상(2회, 1990년), 단재문학상(1994년), 대산문학상(1998년), 공초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과 동국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하였고 예술원 회원이다.

그는 대학 졸업 후 고향 충주에 내려와 살면서 다수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와 정서를 민요 정조로 노래한 민족적 서정시인이다. '파장', '더딘 느티나무'처럼 현실을 묘사하면서 객관적으로 전달하는 시인의 시작 발상은 민중의 내면의 정서를 이끌어내는 데 상당한 절제를 하는 점을 보였다. 게다가 '고향길'처럼 외부의 세계에서 존재의 내부로 시선을 돌린 시인의 민중적 삶에 대한 깨달음을 시를 통해 뛰어나게 전달하고 있다. 가장 지역적 정서를 민족적 정체성과 진정성으로 끌어올린 인물이다.

명편 '농무', '목계장터', '가난한 사랑노래'등 많은 시들이 국어, 문학교과서에 실려 있다. 이러한 연유로 전국적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어 충주는 물론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자리하고 있다. 시인 동류인 ‘우리’ 자아의 시 속에는 친숙한 ‘목계’, ‘가흥’ 지명(地名)들이나 이웃 공동체의 이야기, 지역 장소성이 있어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다. 사회적 약자들의 비애와 고통을 매우 사실적인 말투로 그려냄으로써 현대시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겨서 고무적이다.

그를 지역에서 살리기 위해서는 ① 충주에는 메타버스 융합형 신경림문학관을 건립해야 한다. ② 생가터에서 특별전시회를 마련되어야 한다. ③ 그의 성과물과 활동 사례에다가 충주학적 시각에서 남한강둑을 따라 신경림 민요길을 만들고 신경리문학상 제정이 필요하다. ④ 목계장터는 신경림문학공원화하고 그의 학술 자료 정리 총서 간행과 시와 민요 아카이브 구축이 필요하다. ⑤ 민요시 스토리텔링 공모와 학술회의를 개최해야 한다. 특히 그가 관여한 민요답사 등 활동 사진을 묶어 기획전을 열고 시비를 세워 ‘신경림문학제’를 본격화해야 한다.

충주에서 ‘충주학연구소’는 이러한 역할을 앞장서서 추진하고 실천해야 마땅하다. 신경림 구술자료부터 조사해야 한다. 문화재단, 문화원, 예총, 충주 예술 분야의 전문 스텝, 문학단체를 포용하고 신경림문학사업 정책 결정의 기초가 되는 각종 시스템을 수렴해야 한다. 충주 예향(藝鄕) 이미지에 걸맞게 정지용문학관을 사례로 삼아서 신경림 시 정체성 위주의 싱크탱크 역할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신경림문학관의 명품화 만들기에 총력적으로 매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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