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영억 청주 내덕동 주교좌성당 신부

반영억 청주 내덕동 주교좌성당 신부

[동양일보]따사로운 햇살과 소리 없이 피어나는 꽃들을 바라보면 봄을 실감하게 된다. 자연 안에서 움트는 봄의 소리와 함께 마음의 꽃도 활짝 피어나는 아름다운 시간이다.

“사랑은 어떻게 생겼을까? 사랑은 남을 돕는 손을 가졌으며, 가난한 사람, 어려운 사람에게 재빨리 달려가는 발을 가졌으며 비극에 처한 사람을 알아보는 눈을 가졌으며 사람들의 한숨과 슬픔을 경청하는 귀를 가졌다”(성 아우구스티노).

모 방송사의 드라마 고려 거란전쟁의 명대사를 보면, 전장의 혼란 속에서 같은 백성끼리 싸우며 자신의 앞길을 막는 모습을 보고 현종이 백성들에게 다가가며 말한다. “자, 어서 원하는 대로 하거라. 거란군에게 넘기고 싶으면 넘기거라. 베고 싶으면 베거라! 어서!” 백성들은 우물쭈물 할 뿐 어떻게 하지 못하는데 “나는 너희에게 아무 쓸모도 없는 황제다. 나는 너희가 어떻게 살아가는 줄도 몰랐다. 얼마나 억울한지, 얼마나 무서운지, 알지 못했다.” 눈물을 흘리며 말을 잇는다. “미안하다... 부디, 용서하거라...” 백성들은 무기를 떨어뜨리고 땅에 엎드려 대성통곡한다. 이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숨 쉬는 곳이 아니라 사랑하는 곳’에 생명이 움트고 있음을 알게 된다. 사랑의 핵심은 용서이다. 상대의 실수를 이해하고 도와줄 방법을 알고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며 용서하기보다 오히려 청하는 것이다. 그러면 서로 통한다. 사랑은 그야말로 상대를 위해서 움직이는 것이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더 드러난다. 상대의 필요를 알아보고 그의 소리를 존중하여 듣고 응답하는 것이다. 사랑은 친교와 대화 속에서 이루어진다.

우리는 빛과 그림자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존재이다. 사람은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실수하고 잘못할 때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연약함을 인정하면 새 생명이 움트게 되는 시작이 되고 감추면 감출수록 자유롭지 못하며 무거운 짐으로 남게 된다. 나의 한계를 알면서도 상대방에게는 완벽함을 요구하며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세상에는 다양한 크기의 그릇이 있듯이 사랑을 담고 있는 사람의 마음 크기도 다양하다. 나의 욕심을 과도하게 내세우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좋겠다.

뉴스를 보면, 의료공백이 지속되면서 병원에 남아있는 의사와 환자, 가족은 물론 바라보는 모든 이들이 지쳐만 간다. 의료진이 왜 환자를 우선하지 않느냐? 말하는 이들이 있고, 정부의 정책이 졸속이라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고 당사자들의 다양한 의견이 팽팽하게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 참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기적인 마음을 절제 하고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며 상대의 삶과 생명을 거룩하게 여기는 사랑이다. 우리가 얼마만큼 사랑하느냐에 따라 이해의 폭이 달라진다. 진정한 이해와 소통은 사랑에서 비롯된다. 내 입장을 앞세우지 않고 맞은편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헤아리고 받아들일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성경에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12,24) 는 말씀이 있다. 사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는 것’은 그대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명을 낳기 위해 뿌리내림을 하는 것이다. ‘나 하나쯤이야!’ 가 아니라 ‘나 하나라도’ 밀알이 되고자 한다면 모두가 행복하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은 사랑의 모습을 보여줘야 할 때이다.

국회의원 총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정국이 어수선하다. 서로를 위하는 마음은 찾아보기 어렵다. 북한은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동해상에 발사하며 불안을 가중하고 있다. 이럴 때야말로 한 사람의 역할이 중요하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에게 좋을 것을 찾지 않고 남에게 좋은 것을 찾는 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 “세상이 악한 기운, 이기심, 두려움에 지배당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인류에게 용서와 화해, 희망을 가능케 하는 선물은 바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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