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호 한국외대 명예교수

박노호 한국외대 명예교수

[동양일보]22대 국회의원선거의 막이 올랐다. 오늘, 내일 이틀간 후보자등록을 하고, 3월 28일 선거기간이 개시되면 22대 총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14일간의 치열한 선거전을 거쳐 4월 10일 저녁 6시에 마무리된다.

국회의원선거는 각 지역구를 대표하는 동시에 나라 전체의 일에 의결권을 행사하는 일꾼을 뽑는 선거다. 따라서 입후보자는 모든 면에서 충분히 준비되어 있어야 하며, 유권자는 누가 더 잘 준비되어 있는지, 누가 더 잘할 수 있는지 꼼꼼하게 살펴 뽑아야 한다.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 한다. 직접민주주의를 대체하는 간접민주주의의 제도로 ‘선거’라는 것이 생겨나 오랜 세월 동안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왔다. 그러나 선거가 언제나 긍정적인 역할만 한 것은 아니다. 선거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비민주적, 반민주적 행태가 저질러졌음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따라서 선거는 입후보자나 유권자 모두 잘 준비하고 냉철하게 판단하여 가장 민주적인 결과를 도출해야 비로소 ‘민주주의의 꽃’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총선을 20일 앞둔 지금까지도 이 선거가 국민을 위한 선거인지 그들만을 위한 선거인지 어림잡을 수 없는 국민의 마음은 어지럽기만 하다. 선거일 전 1년까지 획정되어야 할 선거구는 지난 2월 29일 선거일을 41일 앞두고 가까스로 국회를 통과했다. 20대 총선에서는 42일, 21대에서는 39일을 남겨놓고 선거구가 획정되었으니 선거를 코앞에 두고 획정 짓는 일이 아예 습관화되었다.

선거구의 획정 기준을 인구에만 국한하다 보니 농산어촌 지역에는 이곳저곳 기이한 선거구가 나타났다. 강원의 ‘춘천·철원·화천·양구 을’ 선거구의 경우 소위 특례선거구라 하여 철원군·화천군·양구군이 춘천시의 극히 일부와 함께 선거구를 이루고 있다. 똑같은 양상은 전남 ‘순천·광양·곡성·구례 을’, 서울 ‘중·성동 을’, 경기 ‘동두천·양주·연천 을’, 전북 ‘군산·김제·부안 을’ 선거구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또한, 농산어촌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인구만을 기준으로 선거구를 획정하다 보니 충북의 경우 보은·옥천·영동에 괴산을 갖다 붙여 기이한 모양의 선거구로 만들어버렸다.

국가의 3대 구성요소는 영토, 국민, 주권이다. 따라서 한 국가에 있어서 국민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영토다. 선거구 획정에 인구와 면적을 적절하게 고려한다면 농산어촌의 대표성을 높임은 물론 4개 시군을 아우르는 거대 선거구 문제도 부분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각 행정구역의 인구 1인당 1점을 부여하고 면적 1제곱킬로미터당 50-100점을 일률적으로 부여하여 그 합을 기준으로 하는 방법이 있으며, 면적당 부여 점수는 적정선을 선택하면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선거구의 획정과 관련된 모든 권한을 철저히 중립적인 중앙선관위에 일임하여 선거구 획정을 둘러싼 정당 간의 눈꼴 사나운 정파 싸움과 나눠먹기식 야합을 방지해야 한다.

각 정당은 고르고 또 고른 후보를 내세우고 국민은 그중에 가장 믿을 수 있는 후보를 선택하는 과정이 바로 선거의 과정이다. 그런데 각 정당의 공천 과정에서 과연 그런 후보가 가려졌는지에 대해 국민은 선뜻 믿음이 가지 않는다. 후보등록일이 코앞에 닥쳤는데도 어떤 후보는 아직 정해지지도 않았고 또 어떤 후보는 선거구민이 알지도 못하는 사람으로 하루아침에 바꿔치기하는 모습에 어느 누가 믿음이 가겠는가? 그나마 확정된 입후보자 중에는 밤중에 졸면서 팥 고르듯 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흠결투성이 후보들이 수두룩하다.

선거가 참 이래도 되나 싶고 이건 아무래도 경우가 아니지 싶다. 대한국민은 이번 22대 총선에서도 투표소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지 않을 것이다. 못 찍어주는 후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야 하는데 오히려 찍으면서도 께름칙한 기분을 감출 수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선거공보물도 잘 읽어보고, 동네 어귀 정견발표장에도 나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들어보고, 조곤조곤 따져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을 뽑아야 한다. 진흙 속에 빠져있는 이 땅의 ‘민주주의의 꽃’을 위대한 유권자, 바로 우리 손으로 또 한번 살려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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