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규 제천시장

김창규 제천시장

[동양일보] 1996년 여름 스코틀랜드 글래스고(Glasgow)를 방문한 적이 있다. 애덤 스미스(Adam Smith)의 『국부론』에 워낙 관심이 많던 시절이어서 나의 글래스고 방문은 애덤 스미스 여행이나 다름없었다. 스코틀랜드에 가면 늘 시원한 날씨가 좋았고 이런 외진 곳에서 어떻게 애덤 스미스와 같은 위대한 도덕철학자이자 경제학자가 탄생했는지 궁금해하곤 했다.

글래스고는 인구 60만 정도의 제법 큰 도시로 조앤 K. 롤링이 해리포터 시리즈를 착상해 낸 중세 도시이다. 글래스고에는 천년이 다된 엄청난 유적들이 도심에 가득한데 그중에 글래스고 대성당이 대표적인 유적이다. 애덤 스미스가 강의했던 글래스고 대학교도 600년이나 된 유서 깊은 대학교로 애덤 스미스가 강의했던 18세기 중반에 최고 전성기를 누렸다. 지금도 세계 유수의 대학으로 그 위치를 지키고 있으며 스포츠공학이나 토목공학, 법학 등 몇몇 분야에서는 영국에서 최고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글래스고에는 산업혁명 초에 흥성했던 흔적이 여러 곳에 남아 있는데, 외진 곳에 있는 글래스고가 급격한 성장을 한 배경에는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었다. 글래스고는 자본주의 정신으로 무장한 건실한 사업가들이 많아지자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하여 19세기 초에는 인구 120만의 대도시로 발전하였다. 글래스고의 발전 과정을 공부하다 보면 건강한 자본주의에 대한 이해가 경제발전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를 금세 이해하게 된다.

고전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의 화두는 ''한 나라의 부는 어떠한 질서 또는 원리에 의해 형성되는가?''였다. 애덤 스미스는 자유로운 시장자본주의에 의해 국부의 가장 효율적인 증진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당시의 중상(重商)주의자들이 금과 은의 축적이 국부의 증진이라고 본 반면, 애덤 스미스는 시장 참여자들에게 자유로운 경제행위를 보장하여 자유로이 생산하게 하고 교환하게 하면 국부가 가장 효과적으로 증진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야말로 시장자본주의의 기본원리에 대한 위대한 통찰이었다. 이러한 애덤 스미스의 논리는 자유방임주의로 불리어졌는데 애덤 스미스의 자유시장주의는 그의 도덕철학적 전제조건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는 그저 자유방임주의로 오해하기가 십상이다. 그의 '보이지 않는 손'은 절대 자유방임이 아니고 인간의 선한 공감 능력이라는 마음의 손이다.

애덤 스미스는 경제학자이기 전에 위대한 도덕철학자였다. 그는 도덕철학론에서 인간을 선한 공감 능력을 지닌 존재로 이해하였는데, 이러한 인간성에 대한 인식이 보이지 않는 손을 통찰하는 배경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시장 참여자가 '선하다'라는 인식에는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선하지 않은 시장 참여자로 인한 시장의 실패를 누차 보아온 우리에게는 시장 참여자가 본래 선하게 태어난 것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시장 참여자들이 선하게 행동해야 자본주의가 성공할 수 있다는 당위론에 기반하여 이해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자본주의는 이 선한 마음의 기초를 잃으면 금세 무너지고 만다. 애덤 스미스가 생각한 진정한 자본주의 사회는 양심과 도덕이 충만한 건강한 사회이다. 선한 마음이 무너져 보이지 않는 손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그 자본주의는 천민자본주의가 되고 만다. 천민자본주의하에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돈만 벌면 된다. 이런 자본주의하에서는 기업가들이 존경받지 못하고 자칫 지탄받는 대상이 되어 사회는 안정되지 못하고 분열되어 간다. 우리 자본주의도 종종 천민자본주의로 비판받곤 한다. 우리 사회가 분열로 치닿고 있는 것도 우리 자본주의에 스며든 천민성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우리나라도 국민 전체의 도덕성이 높아져 법을 지켜가며 돈을 벌고 번 돈을 따뜻하게 쓰는 애덤 스미스적 자본주의가 되기를 바란다. 진정한 자본주의는 가만 내버려 둬도 저절로 자라는 자유방임적 존재가 아니라 잘 가꾸어진 높은 도덕성의 기초 위에 꽃피우는 도덕적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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