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주완 순천향대 아산학연구소부소장

맹주완 순천향대 아산학연구소부소장

[동양일보]유스티티아(Justitia)로도 불리는 정의의 여신 디케(Dike)는 제우스와 율법의 여신 테미스의 딸이다. 디케는 정의가 훼손된 곳에 재앙을 내린다. 늘 균형과 평형을 중시하는 차분한 모습이며, 공감과 연민의 마음을 갖고 인간을 대한다. 그녀의 여신상은 한 손에 저울을, 다른 한 손에는 칼을 쥐고 있으며 눈은 안대로 가려져 있다. 저울은 개인 간의 권리 관계에 대한 다툼을 해결하는 형평성을, 칼은 사회 질서를 파괴하는 자에 대한 엄정한 응징을 상징한다. 눈의 안대는 출신배경, 가족관계, 사회적 지위, 재산상태 등을 전혀 모르는 상태인 ‘무지의 장막’과 같이 완벽한 공정을 의미한다. 과연 우리의 현실에서도 디케의 저울은 균형을 유지하고 있을까.

우리는 출생부터 불평등한 상태에 놓여있다. 우리의 선택이 아니라 나라, 가문, 부모에 따라 아주 우연하게 숙명적으로 정해진다. 우리는 태어날 때 입에 숟가락 하나씩 물고 나온다는 일종의 ‘수저계급론’이 있다. 소수의 몇 사람은 복(福)있게 금수저와 은수저를, 그보다 많은 사람들은 동수저를, 나머지 사람들은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다. 수저계급론은 출발선이 각기 다른 달리기 경주에 다름 아니다. 출발선이 다른 달리기는 원천적으로 불공정한 경기가 된다. J. 롤스는 복이나 운도 그것이 우연적으로 습득된 것이기에 나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공유자산으로 보았다. 누군가 운(運)좋게 탁월한 지능, 천부적인 능력과 자질을 갖고 태어났다하더라도 노력의 산물이 아니기에 도덕적으로 공정하지 못하다고 보았다.

모든 사람에게 기회균등을 보장하는 공정한 사회는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가령 잠재능력을 개발하는데 필요한 정도의 교육이 모두에게 제공되는 교육정의나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위해 모든 사람에게 의료혜택을 보장하는 의료정의 등은 이론적으로는 사회제도나 정책을 통해 실현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자본주의 관행상 제력 있는 사람들의 무분별한 사교육 투자와 고급의료 진료까지도 차단하기는 어렵다. 완전히 자유로운 환경에서 능력 있고, 재능과 사회적 지위를 타고난 사람이 출세할 수 있는 세상을 당연시 했던 300여 년 전의 A. 스미스의 자유방임 경제철학은 현재까지도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자연적·사회적 운에 우리의 운명이 결정되고 가진 자가 특권을 누리는 사회적 구조 속에서 정당하고 효율적인 재화 분배방식은 무엇일까.

아인슈타인이나 모차르트가 아닌 다음에야 일반인들의 천부적 재능은 대동소이하겠지만 가정형편과 양질의 교육으로 능력을 갖춘 가진 자들이 편향된 이익으로 인생의 성공가도를 달려가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사회적 운을 가진 사람들에게 유리한 고착화된 자유방임체제에서 정부가 조치로 취할 수 있는 일은 사회적 이익과 불이익을 제한하고 조정함으로 불안전성을 보상해주는 방식이다. 가령 상속세, 양도세를 고율로 정하고 사회적 지위에 관계없이 공공교육과 직업교육을 무료로 제공하여 부의 편중과 교육과 취업의 기회를 개방하는 일이다. 또한 유아 질병이나 기형아 발생을 예방하는 공공 위생 등 양질의 의료 환경을 제공하고, 소외계층을 구제하는 복지정책을 써야 한다.

운동경기나 도박의 경우에도 공정성은 절차에 있다. 당사자들이 합의한 절차를 따랐을 경우 도달된 결과에 관계없이 공정함으로 간주한다. 다만 중요한 것은 절차를 구성하는 합의의 원칙이다. 과연 모두가 찬성하는 원칙은 가능할까. 롤스가 생각하는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는 개인의 출중한 능력까지도 공동자산으로 보는 ‘재능의 공 개념’이 용인되는 세상이다. 물론 공동 자산으로 간주하는 것은 재능 그 자체가 아니라 재능의 분배방식이다. 즉 우연한 천부적 재능으로 이득을 얻은 사람들은 관리자이며 조력자가 돼서 자신보다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의 처지를 개선시키는 일에 도움을 줘야 한다고 본 것이다. 인간으로서 자존심을 지키고 인생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가치들은 평등하고 공정하게 분배돼야 한다. 인간으로서 품위 있는 삶을 보장받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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