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황 시인

나기황 시인

[동양일보]봄이 되면 가장 먼저 바뀌는 것이 무엇일까.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봄은 오감으로 느끼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우선 달라진 기온의 변화를 들 수 있다. 겨울이 다 지났다는 안도감에 꽃샘바람이 옷 속을 파고드는 쌀쌀한 날씨에도 체감온도는 너그러워진다. 옷차림도 달라진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섰다가 낭패를 보기도 하고, 한낮 따뜻해진 날씨 탓에 두툼한 겉옷이 민망할 때도 있다.

그다음에 눈으로 보는 봄이 시작된다. 주위를 돌아보면 어느새 가지 끝에 발그레한 꽃망울이 맺히고 있다. 움찔움찔 그들만의 언어로 긴밀히 내통하다 어느 순간 발화점(發花點)에 달하면 꽃불이 산과 들을 태우고 절정으로 치달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봄이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계절로서가 아니라 인생의 봄, 청춘의 봄처럼 인생을 아우르는 한 지점으로서 자연의 섭리를 깨닫게 된다. 한 해를 돌아 겨울을 지나 어김없이 찾아오는 봄, 무릇 생명 있는 것들의 윤회를 보면서 하늘의 섭리가 참, 하는 감탄사가 나온다. 생로병사로 마감되는 인생무상(人生無常)이 아니라, 먼 훗날 영혼의 쉼터에 이르기까지 희망의 싹을 틔우며 살라는 계시처럼 느껴진다. 봄은 봄이로되 옛 봄이 아니로다(?).

일전에 친구들을 만났다. 60년 넘게 ‘지기(知己)’로서의 인연을 지켜 온 초등학교 친구들이다. 대부분 지난해에 나이 앞자리 숫자가 바뀌어 ‘마음이 끌리는 대로’ 살아도 좋다는 ‘종심(從心)’에 이른 나이가 되었다. 따뜻한 봄날, 무탈하게 살아온 어릴 적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것도 큰 복이다. 고향 친구들과 ‘돌아봄’의 시간은 달리 준비하지 않아도 바로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단순히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다. “이 나이에 뭐” 하는 맥빠진 넋두리도 아니다. “청·바·지!”하는 건배사에 한바탕 멋쩍은 웃음을 나누는 활력소의 장이다. ‘청춘은 바로 지금부터’라고 외칠 수 있는 그들만의 공간이며 그들만의 사유가 머무는 자리다.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의 스펙트럼을 온전히 공유해 온 인연들이고 삶의 위로를 나누며 살아갈 남은 생의 동지들이다.

봄은 따뜻한 은유의 계절이다. ‘봄’이라는 명사형 어미로 끝나는 말이 모두 봄처럼 따뜻하다.

고향 친구들과 추억을 ‘돌아봄’이 그러하고, 내일의 삶을 기대하는 ‘바라봄’이 그렇다. 타인을 위해 봉사하는 ‘돌봄’ 도 있고, 응원하고 기다려주는 또 다른 ‘바라봄’도 있다. 기꺼이 참여해서 맛보는 ‘해봄’도 있다.

그렇다. 한 꺼풀만 걷어내도 ‘봄’에 대한 성찰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돌아봄’이 없는 현재는 그저 순간순간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요, 내일에 대한 ‘바라봄’이 없으면 오늘은 그저 무기력한 하루에 불과하다. ‘돌아봄’은 잘못을 헤아리는 아쉬움이 아니라, 생의 일기장을 넘기듯 내 인생의 봄날은 어떠했는가 살펴보자는 것이요, 무수히 많은 봄날을 ‘봄’ 없이 허비하지 않았는가 돌아보자는 것이다. ‘바라봄’도 마찬가지다. 불확실한 내일이라고, 헛된 걱정거리에 매달려 귀한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는 얘기다. 계절의 봄이 일상 속에서 ‘마음의 봄’을 찾아보라고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요즘이다.

우리는 봄에 봄이 왔음을 안다. 봄이 오면 꽃이 피는 것을 안다. 바라봐 달라고 꽃은 피는 것이다. 인생도 봄도 잠깐이다. 스쳐 지나가는 봄이 아니라 꽃도 보고 주위에도 관심을 가지고 살라는 자연의 메시지다.

해마다 봄은 오지만,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봄이 차려주는 잔칫상이 달라진다.

고영민 시인은 ‘봄의 정치’라는 그의 시에서 ‘자주 밖으로 나가고 싶은 것만으로도/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했다. 아무렴, 봄비가 내려도 좋고, 햇살 달콤한 봄날이어도 좋다. 꽃향기 어우러지는 부활의 봄이다. 눈부신 봄날, 그대, 계절의 봄도 인생의 봄도 맘껏 즐기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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