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100여년의 주춧돌을 놓은 발자취를 만나다
전국 최초 충북여성독립운동가 전시실
그곳에 가면 그들의 시간을 기억할 수 있다

이미희 해설사가 관람객들에게 충북여성독립운동가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이미희 해설사가 관람객들에게 충북여성독립운동가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충북여성독립운동가 전시실 안쪽에 충북여성독립운동가 관련자료가 전시돼 있다.
충북여성독립운동가 전시실 입구에 충북여성독립운동가 관련자료가 비치돼 있다.
충북여성독립운동가 전시실 내부

[동양일보 도복희 기자]독립에 대한 열망 하나로 민족의 아픔을 끌어안은 채 불꽃같은 삶을 살다 간 충북의 여성들이 있다. 대한민국 100여년의 주춧돌을 놓은 충북 여성독립운동가들이 바로 그들이다.

외세의 침략과 강탈로 이어지는 민족의 위기 앞에서 여성들은 힘을 모았다. 1907년 국채보상운동에 금가락지를 내놓았고 3·1만세 운동에 앞장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항일단체를 만들어 무장항일투쟁에 직접 뛰어들었고 독립운동가를 내조하며 보이지 않게 지원하기도 했다. 지난 금요일 찾아간 충북여성독립운동가 전시실 앞, 그들이 지나온 삶의 내력과 빛바랜 사진 앞에서 한참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상당구 충북미래여성플라자 A동 1층에 위치한 전시실은 독립운동가 윤희순, 어윤희, 박자혜, 임수명, 이화숙, 연미당, 오건해, 신순호, 신정숙, 박재복 등 10명의 독립운동가에 관한 자료와 청동으로 된 동상이 전시돼 있었다. 전시관 입구 기록으로 남아있는 신창희, 민인숙, 김수현, 이국영, 홍금자 민금봉 등 기억해야 할 역사의 이름 앞에서 저절로 숙연해졌다.

남성 중심의 독립운동사에 가려져 있던 충북의 여성독립운동가들을 위한 전국 최초 전시실, 그곳에 가면 독립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그들의 시간을 기억할 수 있다.



△충북의 여성독립운동가들

전중이 일곱이 진흙색 일복 입고/ 두 무릎 꿇고 앉아 주님께 기도할 때/ 접시 두 개 콩밥덩이 창문열고 던져줄 때/ 피눈물로 기도했네 피눈물로 기도했네 –선죽교 피다리 전문

안으로 들어서면 전시실 벽면에 적혀있는 서대문감옥 여옥사8호 ‘감옥의 노래’다.

입구에서부터 차례로 충북의 여성독립운동가들의 활약상이 전시돼 있다.

윤희순(1860년 6월 25일~1935년 8월 1일장) 최초 여성의병장의 흉상이 눈에 띈다. 그는 1896년 의병이 일어나자 ‘안사람 의병가’ 등을 지어 여성 의병 참여를 촉구했다.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 이후 탄약제조소를 설치해 ‘여성의병단’을 조직해 의병활동을 지원했다.

왼쪽 코너에 어윤희(1880년 6월 20일~1961년 11월 18일) 만세 운동의 투사가 보인다. 그는 개성지역 3·1 만세운동 독립선언서를 자진 배포하고 1년 6월형을 선고 받았다. 옥중에서 항일투쟁을 주도했고 신간회와 근우회 개성지회 창립주역이며 ‘유린보육원’을 설립 운영했다.

박자혜(1895년 12월 11일~1943년 10월 16일)는 동료 간호사들과 ‘간우회’를 조직해 만세 운동을 주도하다 체포돼 고초를 겪는다. 단재 신채호와 결혼해 그의 독립활동을 뒷바라지하며 국내와 중국 내 독립운동가들 사이 연락책으로 활약했다.

진천군 이월면이 본적인 임수명(1894년 2월 15일~1924년 11월 2일)은 신팔균 장군을 만나 결혼한 뒤 남편이 베이징으로 망명하자 국내에서 군자금 모집과 동지 간 항일 비밀문서 전달과 연락을 담당한다.

임시정부 안살림을 꾸려나간 오건해(1894년 2월 29일~1963년 12월 25일)는 임시정부 요직을 지낸 남편 신건식을 도와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독립운동 명문가의 혈통을 이은 전사 신순호(1922년 1월 22일~2009영 7월 30일)는 신건식과 오건해의 딸로 충북 청원에서 태어나 여군으로 활약하며 광복 직전 외무부 정보과에서 각종 정보를 수집하는 등 항일 운동에 일조했다. 해방 후에는 한인동포 귀국 외교적 처리 임무를 맡았다.

전투, 정보공작에 능한 여성광복군 신정숙(1910년 5월 12일~1997년 7월 8일)은 ‘조선의용대’에 입대해 여군으로 활약했다. 충칭에서 김구의 비서로 근무하다 1940년 한국광복군으로 활약했다.

이화숙(1893~1978)은 한인 사회 여성 리더가 된 최초의 여대생으로 3.1운동이 일어나자 이화학당을 중심으로 만세운동을 지원하고 상하이로 돌아가 ‘대한애국부인회’를 결성한 인물이다.

증평 출신 연병환의 장녀 연미당(1908년 7월 15일~1981년 1월 1일)은 중국 여성독립운동 단체 통합의 주역으로 1931년 ‘상하이한인각단체연합회’의 ‘상하이여자청년동맹’ 대표로 참여해 여성 독립운동계 공동 항일 연합 전선 구축을 주도했다.

박재복(1918년 1월 28일~1998년 7월 18일) 군시제사주식회사 대전공장에 근무하며 동료 여성노동자들에게 중일전쟁에서 일본이 패전할 것이라 수차례 항일의식을 고취해 일본 경찰의 감시망에 포착 1년여 간 옥고를 치렀다.

동상이 놓여 있는 10명의 여성독립 운동가의 생애를 둘러보고 나오면 영상을 볼 수 있다. 전시실에 오지 못하는 경우 해설사가 직접 찾아가는 해설을 들을 수 있다. ☎043-220-6452~5로 문의해 미리 예약하면 주말이나 휴일에도 전시실 관람이 가능하다.



△“청년들 와서 강한 정신세계 배워가길”

이미희 해설사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여성독립운동가를 위한 전시실이라는 점에서 뜻깊은 장소”라며 “비록 규모는 작지만 이 공간 조성으로 인해 여성독립운동가들에 대한 발자취를 재조명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학생이나 청년들이 많이 와서 관람함으로써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의연하고 당당하게 나라를 위해 살다 간 선조들의 생애를 통해 강한 정신세계를 배워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관람시간은 월요일에서 금요일 오전 9시~오후 6시까지다. 토요일, 일요일, 공휴일은 휴관이고 관람료는 무료다.

도복희 기자 phusys2008@d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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