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정 복 흥덕새마을금고 이사장

글로벌 금융위기에 실물경제까지 어려워지면서 세계 각국은 무역규제를 통한 자국기업보호에 앞장서고 있다. 법원역시 지나치게 자국에 유리한 결정을 내린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특히 한국 기업들은 올해 들어 수난의 해라고 할 만큼 다양한 무역규제 조치를 당했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경제는 무역규제로 인하여 기업 채산성 악화, 주가하락, 소비심리 위축 등 기업뿐 아니라 내수경제 전반에도 심대한 타격을 입는다.

올해 들어 반덤핑, 세이프가드 조치, 등을 통해 한국 제품이 적용받은 수입 규제조치는 세계적으로 122건에 이르며, 상반기 신규제소 건수가 16건으로 역대 최다 수치다. 미국은 지난달 30일 한국산 대형 가정용 세탁기 제품에 대해 최고 82%에 이르는 예비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다. 프랑스 정부도 현대.기아자동차에 대한 덤핑조사를 유럽연합(EU)에 요청했다. 브라질은 한국산 타이어의 덤핑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급증한 새로운 유형의 비관세 장벽에도 부딪혔다. 특허 등 지적재산권 관련 소송도 증가하는 추세다. 지적재산권의 확보와 선점은 기업의 이익과 미래를 결정지을 수 있기 때문에 다국적 기업들은 자사의 기술을 합법화하고자 하는 일에 혈안이 돼있다.

얼마 전 삼성전자와 애플간 특허소송에서 미국연방배심원단은 일방적으로 자국 기업인 애플의 손을 들어줬다. 삼성전자가 애플의 특허를 침해했고 그로인해 10억달러를 배상해야 한다는 평결에 대해 미국 주요 언론들까지 혁신의 의미를 일깨웠다는 의미를 부여하는 한편, 어느 업계에서든 앞서가는 경쟁업체 제품에 대한 모방은 흔히 있는 일임에도 업계의 판도를 뒤바꾼 혁신의 공로가 모방과 따라잡기에 묻혀서는 곤란하다는 일방적 접근으로 일관했다. 국익 앞에선 언론조차 공정보도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달 31일 미국 버지니아 지방법원은 듀폰이 제기한 제품판매금지 소송에서 자국 기업인 듀폰 측에 또다시 유리한 안방판결을 했다. 재판장인 맥과이어 우즈 판사가 오랫동안 듀폰을 위한 로펌활동을 해왔다는 것이며 이에 대하여 코오롱 측의 판사기피 신청도 미국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현지 주민들로 구성된 배심원단 역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비전문가로 구성된 배심원단이 법적으로 까다롭고 사실관계도 복잡한 사안에 대해 핵심적 결정을 내리는 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이번 소송을 계기로 잇따르고 있다. 일반적으로 배심원들은 감정적으로 좋은 편나쁜 편을 가려내는 식으로 판단을 내리게 마련이며, 기술적인 것을 고려하기보다는 그럴듯한 이야기(스토리텔링)에 관심을 기울이는 경우가 많다. 또 배심원단의 자질도 논란거리다. 가정주부, 경비원, 운동코치 등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은 아라미드와 같은 최첨단 화학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제대로 된 평결을 내릴 수 없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미국 IT전문 매체인 와이어드(Wired)IT에 문외한인 배심원들이 최첨단 지적재산권을 다루는 소송의 평결을 내리는 제도에 많은 문제점이 있다고 비판했다. 그동안 미국 내에서 벌어진 특허, 영업비밀 관련 소송에서 타 기업이 미국기업을 이긴 사례가 거의 없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음을 볼 때 미국의 배심원단 제도는 상당히 부당한 제도임을 만 천하에 공표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미국 배심원단이 잇달아 우리 기업에 완패에 가까운 평결을 내린 배경에는 자국 기업이 세계 1등이라는 문화적 자부심도 깔려있다고 봐야한다. 따라서 사전 문화적 정서까지 고려한 사업전략을 수립, 제품 디자인 단계에서부터 특허 소송 가능성도 염두에 둔 설계가 이루어져야한다. 최근엔 신흥국을 중심으로 무역장벽의 외연이 더욱 확대되는 추세다. 새로운 형태의 규제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미국과 같은 소비국 입장이 아닌 우리로서는 월등한 기술력을 앞세워 규제 장벽을 넘어서는 것만이 살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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