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희 팔 논설위원·소설가난 괜찮어 괜찮어 마누라가 돈 잘 버니까.” 그러니까 마누라가 돈 잘 버니까 이번 사고 친 일도 마누라가 돈으로 다 해결해 준다 이거다. 그건 그럴 게 틀림없다. 기금까지 그 자의 온갖 궂은일들은 그 자의 마누라가 다 해결해 줬으니까. 하지만 마누라가 돈 잘 버니까 괜찮다는 거 이게 영 듣는 사람들은 못마땅하다. 마누라가 뭐 그리 잘 벌며, 설형 잘 번다해도 말을 그렇게 해서야 되느냐 이거다. 이런 그 자의 됨됨이를 반영하는 그 자라는 별명이 붙게 된 사연의 과정이 이채롭다.

-이 반편이 같은 자. 그런데 반편이 같지는 않다. 어찌 됐든 제 마누라를 제 손안에 꽉 틀어쥐고 있으니 보통사람보다 지능이 매우 낮은 건 아니지 않는가. 푼수라는 것도 걸맞지 않는다. 묻지도 않은 말 푸슬푸슬 지껄여 좀 푼수 같긴 하지만 그게 지능이 모자라서라기보다 유머를 슬쩍 던지는 듯 하는 재치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그럼 기생오라버니라면 어떨까. 늘 빤드레하게 차리고 있어 여전 기생오빠 같기는 하나 그 자 마누라가 기생은 아니니 이도 맞지 않는다. 그 자 놀고먹기는 하나 마누라 술파는 창기 아니라 조신한 조강지처이니 기둥서방은 더구나 아니고, 그렇다면 남한테 있는 것 없는 것 헙헙하게 내돌리니 무등호인(無等好人)이라 할 수 있겠는데 그러자니 결국은 무위도식으로 마누라 등골 빼먹는 일이고 보면 이 역시 어울리지 않는다. 이것저것 의사하고 그럴싸한 것들을 끌어다 붙여 보아도 딱 떨어지는 별명거리가 없자 동네사람들은 그 작자라 부르기로 했다. 그런데 본인이 악하거나 남에게 해를 끼치는 자는 아니니 모질다는 느낌을 주는 은 빼고 그냥 그 자라 하기로 다시 상의가 돌았다.-

그 자가 차 사고를 낸 것이다. 마누라 졸라서 이틀 전에 구입한 중고 소형경차의 앞대가리가 바싹 부서졌다. 그런데도, 더구나 상대방 차가 잘못이라면서도, 또 자기 갈비뼈가 이상하다고 하면서도 그냥 상대방차를 놔 보냈다는 것이다. “그게 무슨 소린가. 자네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닌데 그냥 보내다니 그걸 시방 말이라고 하는가?” 문병 간 동네친구들이 윽박지르는데 거기다 대고 난 괜찮어 괜찮어 마누라가 돈 잘 버니까하는 거였다.

참 그야말로 기가 차고 코가 차는 일이다. 그 자의 마누라는 하루하루 날품 판다. 이른 봄부터 시작해서 늦가을까지 하루도 쉬는 날이 없다. 인삼밭, 수박밭, 고추밭, 고구마 밭, 도라지 밭, 더덕 밭 등등. 이러한 데서 심고, 매고, 순치고, 따고, 캐고 하는 일들이 연이어 있고, 땡볕 아래서 허리 굽히고 쪼그리고 앉아 종일 하는 일이다.

이런 걸 20년도 넘게 해오다 보니 예순이 훌쩍 넘어 다리 허리는 말할 것도 없고 온 삭신이 안 아픈 데가 없다. 그런데도 사업주들이 놓아주질 않는다. 이제 그 햇수면 베테랑이 된데다 젊은이들이 농촌을 외면한 지 오래니 결코 노인인구가 늘어나서가 아니라 할머니들밖에 없어서다.

이 할머니들은 여기서만 일하는 게 아니다. 사업주들은, 할머니들이 버스에 엉금엉금 기어 올라탈 수만 있으면 어디든지 싣고 원정을 가기도 한다. 강원도, 전라도, 경상도. 심지어는 제주도까지 12, 23, 34, 45, 56, 67일 돌아치는 것이다. 그 자의 마누라는 이제 이러한 할머니일꾼을 끌어들이는 모집책이고 그 임무수행을 충실히 한다. 그래서 사업주의 신망을 받고 일당이 다른 이들보다 더 많으며 별도의 특별수당도 더러 있다. 이걸 두고 그 자는 내 마누라 돈 잘 번다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아녀자 할머니의 임금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 그 자의 마누라가 며칠이나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 ‘빌어먹을 뭐여. 나 굶어 죽으란 말여!’ 꼭 마누라가 꼬박꼬박 끼니를 코앞에 받쳐야 먹곤 했으니 그 자의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아무래도 수상해.’ 그 자는 입술을 꽉 오므리고 사업주에게 달려갔다. “내놔, 내 마누라 어따가 빼돌렸어. 날마다 전화하고 돈도 더 주고 특별대우할때부터 수상했어. 빨리 내놔 내 마누라 안 내 노면 지서에 고발할껴!” 그 자는 닥치자마자 사업주의멱살을 틀어쥐고 조금도 드팀새를 주지 않으면서 생난리를 피웠다. 그리고 이튿날 그 자의 마누라는 동구 밖 산모롱이 개골창에서 시체로 발견됐다. 뺑소니차가 유기한 것이었다. 그 후 사흘 만에 뺑소니차는 붙잡혔다.

요즘 그 자 어떡하고 있는겨?” “제 마누라 보상금 덕으로 여전한가벼.”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