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만 둘인 내게 아들 여자 친구는 항상 큰 관심의 대상이다. 둘 다 아직 서른이 되지 않았으니 결혼이 급한 나이는 아니지만(?) 청춘의 특권인 사랑이 얼마나 빛나고 아름다운 일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삶에서 사랑을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을 만큼 사랑은 그토록 중요하고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특권이라 생각한다.
큰애가 초등학교 5학년 때 큰애를 좋아한다는 여학생이 있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설레었고 그애가 우리집에 놀러왔을 때 난 내가 마치 사랑에 빠진 듯 마음이 들떴다. 캐나다에서 살 때 작은애가 고등학교 시절 여자 친구가 생겼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 얘기를 듣고 학교에 몰래 찾아가 애들 둘이 나란히 걸어가는 모습을 훔쳐본 적도 있다. 귀엽고 매력적인 여자 친구가 작은애를 홀연히 떠났을 때 실의에 빠져 힘들어 하는 작은애를 보며 마음 아팠던 일도 잊히지 않는다. 작은애가 낙서장에 자신의 힘든 심경을 토로해 놓은 걸 우연히 보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딸이 없는 내게 아들의 연인은 새로 생긴 딸처럼 귀한 존재였고 사랑스러웠고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언젠가는 큰 녀석과 헤어지고 힘들어하는 여자애를 달래며 함께 울었던 일도 있다.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 애들 사춘기를 보내느라 더 오롯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그들의 방황과 사랑과 청춘을 경험했던 것 같다.
내가 캐나다를 떠나 한국으로 들어오고 큰애가 직장생활을 하고 있을 때, 큰애가 여자 친구가 생겼다는 말을 했다. 일본 애라고 했지만 크게 놀라지 않았다. 큰애는 어려서부터 일본 문화에 관심이 많았고 일본어에 능통해 캐나다에서도 일본어 잘하는 형으로 통했고 늘 주변에 일본 친구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미 캐나다를 떠난 터라 볼 수도 없고 간접적으로만 그애 소식을 들을 수 있어서 안타깝기도 했다. 노골적으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결혼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뜻을 조심스레 비치기도 했다. 아무리 열린 척하지만 정작 내 아들의 일이고 보니 이런저런 편견이나 국제결혼으로 인한 문제점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삼년 만에 한국을 찾은 큰애가 어느 날 요코라 불리는 여자 친구도 휴가차 한국 여행을 왔는데 집에 한번 오겠다는 얘기를 했다. 궁금하기도 했고 한편 조심스런 마음도 있었지만 편하게 그 애를 맞기로 했다. 사진으로 본 적은 있지만 공항에서 처음 만난 요코는 맑고 순수하기 이를 데 없었다. 사람이 어찌나 밝은지 눈이 부실 정도였고 상냥하고 겸손하고 검소하기 짝이 없었다. 우리 부부와 함께 이런저런 한국 식당엘 갔고 속리산 법주사엘 가기도 했다. 한국문화에 관심이 많은 그녀는 이미 몇 차례 경주며 제주도, 서울 등지를 다녀갔다고 했다. 며칠 동안 우리 집에 머물렀는데 낯선 사람이 와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다소 까칠하고 예민한 아들 녀석이 그토록 부드러워지고 편안해진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둘이 대화할 때도 서로 깍듯하게 예의를 지키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딸이 없는 우리 내외는 상냥하고 밝은 요코가 나풀나풀 집안을 왔다갔다 하는 걸 흐믓한 마음으로 지켜 보았다. 물이 건강에 최고라며 수시로 물을 마시는 요코를 보며 평소에 거의 물을 마시지 않는 남편은 나도 요코에게 배워야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순두부와 육개장을 특별히 좋아하는 요코는 낯선 음식이 나올 때마다 사진을 찍으며 어떤 요리인지 물었다.
극구 마다하는 요코를 데리고 쇼핑을 나간 적이 있는데 생전 처음 느끼는 기쁨을 맛보았다. 딸 같은 마음이 들어 이런저런 옷가지를 사주고 싶었지만 하도 사양하는 바람에 가격 부담이 없는 몇 가지만 간신히 사줄 수 있었다. 요코는 이런 선물을 받는 게 처음이라며 눈물을 글썽이며 좋아했다. 며칠 뒤 요코는 아들 녀석과 일본으로 떠났다. 도쿄 근교에 있는 요코네 집을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자연주의자인 요코 엄마와 출판사 임원인 요코 아버지로부터 큰애는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고 했다. 큰애는 만일 요코와 헤어지면 다른 사람을 못 만날 것 같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이 매우 슬프고 쓸쓸하게 들렸다. 우리 내외는 요코와의 결혼을 허락했고 요코네 부모도 애들의 결혼을 허락했다. 올해가 가기 전 큰애가 결혼식을 올린다. 현재 그들의 아름다운 사랑을 마음껏 음미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