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괴산에서 처음으로 임꺽정의 저자 벽초 홍명희의 정신과 문학을 기리는 17회 홍명희문학제가 열렸다. 특히 이번 문학제는 그의 고향인 괴산에서 본 행사를 갖고 생가에서 처음으로 공연을 한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홍명희 문학제 본행사가 고향에서 열리는 것은 11회 때인 2006년 이후 6년 만의 일로 이번 문학제를 계기로 고향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을지 관심을 끌고 있다. 홍명희문학제는 충북민예총 문학위원회와 사계절출판사가 1996112일 첫 행사를 연 이후 해마다 10월이나 11월 청주와 괴산을 오가면서 열렸다.

하지만 홍명희문학제는 1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느 문학제와 달리 개최 장소가 한곳에 머무르지 못해 아쉬움을 주고 있다. 첫 회부터 벽초 생가와 제월리 고가를 답사했지만 학술강연과 축하공연 등 본 행사는 청주예술의전당 소극장, 청주 우암교회, 충북대, 서울YMCA, 청주대, 국립청주박물관 등 그때그때 사정에 따라 장소가 바뀌었다. 199810173회 때 제월대 빈터에 홍명희 문학비 제막식을 하면서 처음 군민회관에서 본행사가 열렸고 20032006년까지 4년 연속 괴산에서 열다 다시 청주로 옮겨졌다.

홍명희 문학제 본행사가 이처럼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된 것은 그의 과거 행적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벽초는 친일 행적을 한 조부 홍승목과 경술국치에 비분강개해 자결 순국한 부친 홍범식의 서로 다른 생애 사이에서 삶을 살았다. 일제강점기 이광수, 최남선과 함께 조선 3()’로 불린 벽초는 대하역사소설 임꺽정을 저술한 문인이자 언론인이며 민족협동전선 신간회 결성과 괴산 삼일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로 여러 차례 옥고를 치렀다.

그러나 벽초는 이 같은 공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방 이후 북한으로 넘어가 부수상을 지낸 전력으로 인해 고향 괴산에서 그의 평가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괴산 삼일만세운동의 주역이었지만 괴산읍 만세운동 기념비에는 한때 그의 이름이 빠지기도 했으며 199810월 세워진 홍명희 문학비는 보훈단체의 반발로 비문을 철거했다가 2000107일 열린 5회 문학제 때 일부 문구를 수정해 재 부착하는 시련을 겪었다.

비문에는 근대민족문학사의 큰 봉우리 벽초 홍명희’, ‘일제강점기 최대의 항일운동단체인 신간회를 결성’, ‘1950년 북한 정권의 부수상으로 재임등 곡절된 그의 삶이 투영돼 있다.

2008년에는 괴산군이 벽초문학상 제정을 추진했으나 역시 보훈단체의 반발로 관련 예산이 전액 삭감됐으며 2009년에는 괴산문화원이 홍명희문학제에 참여하려 했던 계획도 접었다.

벽초는 세상을 떠난 지 반세기가 가까워 오지만 여전히 남북이 대치하는 상황과 좌우 이념 논쟁으로 고향에서 설 자리가 아직은 그리 넓지 않아 보인다. 어느 한 작가가 말한 것처럼 좌우이념 같은 사상에서 벗어나 그가 지니고 있는 작가로서의 존재만 평가해 주는 그런 날이 하루빨리 지역에 정착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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