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영 자 수필가

어제는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이었다. 기온이 갑자기 뚝 떨어져 바바리를 입어 보지도 못하고 겨울 점퍼를 꺼내 입었다. 대륙으로부터 영하 20도의 찬 공기가 밀려오기 때문이란다. 최근에 봄과 가을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슬쩍 점만 찍고 지나가는 듯한 이상한 날씨를 경험한다. 서민들에게는 춥지도 덥지도 않은 봄과 가을이 살기 좋은 계절인데 아쉽기만 하다.

기상청은 12월 하순부터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되어 내년 1월 기온이 평년보다 낮고 추운날이 많을 것이라고 예보했다. 한파도 자주 몰려올 것이라고 하니 벌써부터 목이 움츠러들고 겨울 날 일이 걱정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력공급에도 문제가 있다니 겨울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미리 걱정이 앞선다. 추워지면 난방용 전기소비가 늘어 내년 1월 한파 절정기 때의 최대전력수요가7913KW에 이를 것이라는 정부의 발표다.

9.15 사태가 생각난다. 가마솥더위에 정전으로 모든 가전제품이 스톱되는 블랙아웃을 경험하지 않았던가. 피해신고결과를 보면 우리 충북이 가장 피해 지역이었다. 또 그런 사태가 올 수 있다니 왜 걱정이 되지 않겠는가.

전남 영광 원자력 발전소 3호기의 제어봉 안내판에서 균열이 발견되어 보수작업을 하고 있고 늦어도 연말까지는 정비가 끝날 것이라고 하지만 100KW 급이 차질이 생기면 전력난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영광 5, 6호기는 부끄럽게도 미검증된 위조부품 사용으로 멈춰 섰다. 미검증품이 원전에 광범위하게 사용되어 전반적인 안전점검이 필요하고, 일부 부품이 확보되지 않아 부품 교체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란다.

월성 1호기도 설계수명종료로 가동 중단에 들어갈 예정이라니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가운데 하나라도 정비가 지연되면 내년 1월 예비전력은 130KW로 떨어지고, 두 기가 늦춰지면 예비전력 30만 킬로와트로 지난해 9.15 사태처럼 순환단전을 해야 할 지경이라니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긴 셈이다. 공급을 늘릴 수 없다면 수요를 줄여야 하는데 겨울은 전기난방을 대신할 수단이 없다는 것이 큰 어려움이다. 미검증품은 모두 원자로 격납건물 외부에 있는 조보설비에 사용되었기 때문에 지난해 일본의 후쿠시마 원자력사태처럼 방사성 물질이 누출되는 사고 가능성은 없다고 하니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까.

나는 엊그제 대전에 있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에 갔었다. 그곳은 원자력의 안전성을 실험하고 점검하는 곳이었다. 원자력에 대한 지식이라고는 일본의 후쿠시마 방사능 사고를 TV로 보면서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알게 된 것뿐 면무식이었다. 하지만 이번 방문을 통해 방사능의 위험으로부터 국민들을 지키기 위해 많은 전문가들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경수로는 무엇이고 연수로는 무엇이며 원자력이 우리 생활에 해로운 것만이 아니라 유익하게 쓰이고 있다는 기초지식 정도는 습득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위험으로부터 완전한 원자력시설은 50년 후에나 가능할 것이라는 안내원의 설명을 들으며 우리 다음세대는 위험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소식도 있었다.

다시 경주로 달려가서 월성 1.2호기를 보면서 그 규모의 방대함에 놀랐고 많은 사람들이 원자력 발전에 헌신하고 있다는 것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냉각수를 재활용해서 어류를 키우고 있는 수족관에서 넙치, 광어, 놀람이 같은 어족들이 활발하게 자라고 있고 원자력 발전소 주변에 인구가 늘고 있다는 것을 보면서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성에 대하여도 어느 정도는 긍정적인 시각이 생겼다.

저탄소녹색성장을 부르짖는 시대에 자원의 효율적 활용과 안정된 에너지 수급을 위해 안전성과 경제성이 입증된 원전설비를 최대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원자력에너지는 고유가시대에 유가 변동 등 외부영향을 적게 받는 효율적인 것으로 온실가스(CO2)배출 감축 비용을 줄이는 친환경프로젝트다.

부존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우리나라는 원전설비를 최대한 활용할 수밖에 없는 여건이다. 원전연구는 전문가에게 맡기고 힘들여 생산한 전기를 어떻게 손실 없이 알뜰하게 쓸 것인가를 연구하고 실천하는 것이 우리국민들의 몫이다.

무심히 켜 놓은 전등은 없는지, 보지도 않으면서 틀어놓고 있는 TV는 없는지 다시보고 열심히 끄는 실천으로 올 겨울의 전력난을 이겨 나갈 수밖에 없다. 오늘밤 아이들과 함께 온가족이 모여 앉아 집안의 모든 전깃불을 끄고 10분만 어둠 속에 있어보자. 전기의 고마움을 새삼 깨닫게 되고 어둠의 공포를 크게 느끼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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