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종 호 논설위원·청주대 명예교수

 

집이나 거리, 행사장이나 공공장소, 사무실이나 예술회관 등을 비롯하여 인간이 활동하는 공간에는 그곳의 분위기를 미화시키거나 이용하는 사람들의 감성이나 정서를 북돋기 위해 여러 종류의 크고 작은 가구나 그림, 글씨 및 아름다운 꽃이 심어진 화분들이 진열되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진열품들은 대다수가 어떤 기준이나 법칙이 없이 아무렇게나 배치되고 있다. 어떻게 배치하면 보기에도 좋고 이용하기도 편하며 유의미한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하여 고심함이 없이 마음가는대로 정치(定置)한다.

배치한 당사자에게 질문을 던지면 거의 모두가 그냥 보기 좋은 대로 게시하거나 배치했을 뿐이라고 답한다.

인간은 어떤 곳에서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듯이 물품도 공간 배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와 가치가 달라진다. 물론 위치 선정이나 배치에 대하여 공식적으로 합의된 이론과 지식은 없다.

그러나 비록 교육기관이나 공공기관에서 학문으로서 연구되거나 탐구된 기준이나 법칙이 없을지라도 일반 학문이 과학적인 접근을 요체로 하듯이 게시나 배치도 과학성과 합리성 등을 전제로 한 기준이나 법칙에 맞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과학성이나 합리성 등에 맞지 않는 게시나 진열은 마치 인간이 짝짝이 옷을 입고 있는 듯 부자연스럽고 어중이처럼 보인다.

인간은 심미적이고 합리적인 존재이다.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이치에 맞는 것을 선호한다. 이는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는 조건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게시나 배치는 과학성과 합리성 등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그렇다고 고도의 과학성이나 합리성 등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누구든 지니고 있는 상식이나 이치를 기준으로 글씨와 그림, 가구 및 화분들을 조화롭게 배치하면 된다.

글씨와 그림은 인간 의식과 미관의 지평을 넓게 하고, 가구는 이용의 편의성과 다른 물품들과 조화가 될 수 있게 하며, 화분들은 공간의 자연화 및 생명의 신비성을 느낄 수 있으면서 햇볕과 통풍이 잘되는 곳에 배치하면 된다. 그렇게 하여야만 물품자체가 지니고 있는 본유의 가치를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

물품 배치도 과학성이나 합리성 등의 기준이나 법칙 등을 적용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기준이나 법칙은 위치, 크기, 두께, 색깔, 종류, 간격, 조화 등이 핵심요소가 된다.

길게 뻗은 가지를 그린 철쭉꽃 그림은 꽃의 특성인 향일성(向日性)을 감안하여 남쪽으로 향하는 곳()에 게시하여야 하고, 옷장이나 일반 가구는 크기와 넓이를 기초로 편의와 구성의 극대화를 도모할 수 있도록 배치하여야 하며, 화분은 크기와 두께, 색깔 및 종류 등을 따져 전체가 한 폭의 그림같이 보일 수 있도록 배치하여야 한다.

무엇보다 모든 물품을 하나의 생명체로 보고 하나하나가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전체가 한 폭의 그림이 될 수 있도록 유기체론의 시각에서 배치하여야 한다. 이를 배치의 미학이라 표현할 수 있다. 배치의 미학에 맞게 게시 및 배치하면 공간 재창조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비록 공간의 구성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를 비롯하여 사회 모든 분야도 해당된다고 본다.

크고 작고 간에 사회의 모든 일들은 본질(과학성)이나 이치(합리성)에 맞게 운영되고 처리되어야 한다. 이것이 배치의 미학이 인간에게 주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가까이는 가족이 살고 있는 가정이나 공무를 집행하고 있는 사무실에서, 멀게는 한국 예술의 전당을 비롯하여 경향 각지에 입지하고 있는 전시장 등에서 기준이나 법칙이 없이 산만하게 배치해 놓은 게시물이나 전시품을 접할 때마다 그 물품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곤 한다.

보석같이 귀한 예술품들이 제자리에 맞지 않게 게시 및 배치되어 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위치를 조금만 바꾸어 놓아도 한결 돋보일 수 있는데 그 이치를 깨닫지 못한 것이다.

이는 게시한 그림이 크기나 종류 등이 맞지 않게 배치되어 있는 전시실이나 고도의 이론과 정책을 산출하는 집무실 등을 방문할 때마나 느끼는 감상이다. 더구나 미의 창조자 및 전도사로 자처하는 유명예술인들이 주최하는 전시장일수록 안타까움이 더해진다.

어떠한 종류의 게시나 배치이든 배치의 미학에 맞아야 한다. 더 나아가 국가나 사회의 공적인 일들에도 배치의 미학이 접목되어야 한다. 과학성과 합리성 등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적재적소의 인사, 정책의 체계적 접근, 개체와 전체의 조화 등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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