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영 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겨울 초입이면 한번 씩 들르게 되는 매장이 있다. ‘히트텍이라는 발열 내의를 싸게 판매하는 유니클로 매장이다.

이 매장이 지난 11월 초 난리가 났다.

9일부터 사흘간 전국의 매장에서 히트텍 제품을 동시에 할인 판매했기 때문이다.

19900원대 내의를 9900원에 판매한다는 소문에 매장은 몰려든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고, 모든 매장에서 2~3시간 만에 히트텍이 매진되는 소동이 일어났다.

홈페이지와 고객만족센터는 접속자 폭주로 한때 마비가 되기도 했고 SNS는 이 소식을 퍼뜨리느라 하루종일 시끄러웠다.

2003년 출시 이후 전 세계적으로 3억장이 팔린 히트텍은 우리나라에서도 선보이자마자 인기몰이를 해서 200818만장을 판매하더니 지난해 300만장, 올해는 700만장을 예상하는 등 급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외출복도 아닌 내의가 외국은 물론 유행에 민감한 한국인들에게까지 이렇게 인기를 끄는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저렴한 가격대와 좋은 품질, 메이커에 대한 신뢰도 때문이다. 유니클로는 일본 브랜드로, 불황 속에 줄줄이 쓰러지는 일본의 기업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고속 성장을 하는 기업이다.

유니클로의 제품이 전 세계의 고객들로부터 인기를 끌고 사랑받는 것은 일단 믿을 수 있는 일본산이면서도 비싸지 않다는 점, 그리고 값에 비해 질이 좋다는 점 등 소비자가 인정하는 3박자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점 때문에 한번만 입어보면 충성고객이 된다.

이와 비슷하게 11월에 우리나라에서 판매 대란을 일으킨 제품이 또 있다.

15일 스웨덴 브랜드인 H&M이 전 세계 동시 출시한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 협업 제품은 패션에 민감한 우리나라 20대 고객들에게 선망의 제품으로 소문이 났다. 유명디자이너와 협업한 제품이면서도 가격이 싸고 또 한정수량 제작으로 소장가치가 있다하여 많은 젊은이들이 침낭과 담요를 싸들고 서울과 부산 인천 등 매장 앞에서 밤샘을 하며 기다렸다. 결국 H&M은 이 제품 하나로 우리나라에서 대박을 터뜨렸다.

금융위기로 인한 세계적인 불황 속에서도 이렇게 대박을 터뜨리며 승승장구 하고 있는 유니클로와 H&M. 이 기업들이 고객들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들은 모두 합리적인 가격으로 소비를 이끄는 SPA 브랜드들이다.

SPA‘Speciality retailer(전문점), Private label(자체 브랜드), Apparel(의류)’의 의미를 합친 것으로 자사의 기획브랜드 상품을 직접 제조하여 유통까지 하는 전문 소매점을 의미한다.

a제조사가 주체가 돼 직접 생산을 하여 원가를 낮추고, 유통 단계를 축소시켜 저렴한 가격과 빠른 상품 회전으로 소비자를 만족시킨다. 기존의 방식처럼 제조업체를 중심으로 여러 업체가 생산, 유통을 나눠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기획 생산 유통 과정을 수직적으로 통합시켜 한 업체가 맡음으로써 효율을 극대화하는 방식이다.

SPA브랜드의 큰 장점은 또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을 정확히 파악하여 이를 즉시 제품에 반영시키고 짧은 주기로 새로운 상품을 생산한다는 점이다. 일반 의류 업체들이 계절별로 신제품을 출시하는데 비해 SPA는 제품 순환 기간이 2주 정도로 짧아 일년 동안 24번의 시즌 오프를 진행한다.

또 본사가 직접 매장을 관리해 재고를 파악하고 과잉공급을 방지해 낭비를 줄인다. 인기가 있는 제품은 리오더하지만, 인기가 없는 옷은 즉각 생산을 중단해 수요에 맞게 제품을 공급함으로써 투자를 줄이고 재고율을 낮춘다. 다품종 소량방식과 패스트 패션(Fast Fashion). 이것이 바로 SPA 브랜드의 핵심인 것이다.

불황의 그림자가 깊어지면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고 있다. 유통업체의 매장엔 신상품들이 쌓이지만 소비자들의 발길이 뜸하다. 심리적인 위축이 허리띠를 졸라매게 하는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거품과 허세를 버리고 소비자들이 왜 SPA브랜드 제품에 매력을 느끼는지, 타산지석으로 배워야 한다. 합리적인 가격은 합리적 소비문화로 이어진다. 유행과 관계없는, 내의가 대박을 치는 세상이다. 소비자들은 바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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