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종 호 논설위원·청주대 명예교수

  교회행사의 하나로 성도들과 함께 인근 야산을 올라갔다. 넓은 들과 첨단산업 및 대단위 아파트 등을 병풍처럼 길게 에워싸고 있는 표고 229m의 산이다.

따오기 모양을 닮았다하여 따오기 자를 붙여 목령산(鶩嶺山)이라 이름 하였단다. 갖가지 나무와 꽃들이 온 산을 덮고 있다. 보디빌더처럼 탄력 있는 참나무, 하늘을 향하여 쭉 뻗은 잣나무, 학이 날아와 친구가 되어주는 선비형 소나무, 다른 나무들이 곁에서 자라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독불장군의 밤나무 등과 이름 모를 나무와 야생화들이 여기저기에서 늠름하고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외부의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휘어진 가지인 곡지(曲枝)와 이질적인 나무의 가지들이 붙어서 하나의 나무가 되는 연리지(連理枝)들이 등산객들에게 무언의 가르침을 주고 있었다.

나무 연구가들이 특히 관심을 갖고 있는 이불같이 포근해 보이는 서어나무, 바람도 품에 앉는 회화나무, 직경 한 뼘 자라는 데 500년이 걸린다는 회양목, 속이 썩어도 줄기차게 자란다는 느티나무 등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리고 시와 풍류로 일생을 산 난고(蘭膏) 김병연(金炳淵·김삿갓)이 읊은 소나무와 소나무, 잣나무와 잣나무, 바위와 바위사이를 돌아드니 라는 뜻의 송송백백암암회(松松栢栢岩岩廻)”물과 물, 산과 산이 곳곳마다 기묘하구나 라는 뜻의 수수산산처처기(水水山山處處奇)”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산은 분명 나무와 야생화들이 다투어 자라고 피는 궁궐이었다.

거기에 바람이 일고 산새가 지저귀니 산은 온통 자연의 교향곡(natural symphony)을 연주하는 듯 했다. 생명공동체의 시네마스코프였다.

자연은 글로 쓸 수 없는 성경이고 황야의 대학이라 했던가.’ 네덜란드의 철학자인 스피노자의 자연은 신이다라는 말처럼 자연을 보노라면 신의 위대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신이 아니고는 저 무변광대한 우주와 신비로운 조화를 어찌 만들어 낼 수 있단 말인가. 적재적소에 자리하면서 상보적 관계를 유지하는 정교한 배치와 균형, ·공을 초월하여 한 치의 오차가 없이 운행되는 과학성,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빚어낼 수 없는 현란한 색채들, 억만 종류의 생명체와 공생원리의 지배, 철따라 꽃이 피고 열매를 맺으며 그리고는 아낌없이 버리는 철학의 산실, 스스로 거름(낙엽)이 되어 생명(버섯)을 꽃피우는 대승적 자태, 천년의 침묵을 통한 무언의 웅변력 등을 구비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어머니의 가슴 같고, 만년을 믿어도 좋은 친구 같으며 고향의 전원 같은 포근한 안식처, 잠자는 산하(山河)나 청순한 처녀(處女) 같은 연원한 연인의 모습이다.

이렇듯 자연은 인간에게 무한한 깨우침을 주는 성경이고 진리의 보고인 대학이며 모든 생명체의 주관처이다. 또한 자연은 과학이고 진리이며 교과서이다. 찬란한 시()이고 소설이며 음악이고 예술이다. 인간의 생명원이고 인간이 돌아갈 정신적 고향이다. 인간 생육의 모체이고 정신의 진원지이며 육체의 귀의처이다. 정직, 순정, 순리, 정의, 진리 등의 화원이다. 넓은 의미로는 인간도 자연에 속하지만 인간은 사고력을 구비하고 말을 하며 문자를 사용하는 정신적인 존재라는 점과 천지의 모든 생명체들이 인간에 의하여 그 가치와 의미가 정립된다는 점에서 여타 생명체와 구별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모름지기 자연을 가까이 하는 삶을 영위하여야 한다. 봄철의 화초처럼 생명의 가치를 드러낼 수 있고, 여름의 녹음처럼 우거질 수 있으며 가을의 산야처럼 열매를 생산할 수 있고 겨울의 지구처럼 인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 늦가을의 낙엽처럼 아낌없이 버릴 수 있어야 하고 한 겨울의 대지처럼 다가올 봄에 내 놓을 생명체를 위해 긴 인고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야 한다.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여야 하고 하나가 되어 살아야 한다.

하산하면서 오를 때 보지 못한 것을 내려올 때 볼 수 있었네.’라는 말과 속리산의 유래라고도 알려진 신라시대 최치원의 진리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데 사람이 진리를 멀리하고 산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상(속세)과 함께 하고자 하는데 세상이 산을 등지고 있다는 뜻의 도불원인 인원도(道不遠人 人遠道), 산비이속 속리산(山非離俗 俗離山)이라는 한시를 떠 올려 보았다.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을 닮은 삶을 다짐하였다. 프랑스 루소(스위스 태생)의 말대로 자연으로 돌아가는(Return to nature)’ 것이다. ()에 맞게 정직, 순정, 순리, 정의 등의 삶을 사는 것이다. 자연은, 그리고 산은 하느님(개신교에서는 하나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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