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진영의 이념 대결,네거티브 전략이 보수층 집결 촉발

대형 정책 이슈 대결을 이탈, 이념 대결 양상으로 전개된 18대 대통령선거 결과는 ‘보수의 반란’이 ‘진보의 오만’을 누른 것으로 귀결된다.

이념 대결로 진행된 대선에서 ‘모래알’에 비유되곤 하던 보수층의 ‘조용한 결집’이, 네거티브와 단일화 전략을 앞세워 ‘요란한 세몰이’에 나섰던 진보층에 판정승을 거뒀다.

결과적으로 이념 대결로 몰아간 진보 진영의 전략은 오히려 보수 진영의 위기의식을 자극, 결집력만 강화시켜 준 자충수가 됐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중심으로 한 보수진영을 ‘과거 권력’으로 규정하면서 자신들만이 ‘미래 권력’임을 자임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축으로 한 진보세력의 오만과 독선이 패배를 자초한 결정적 패인이 된 셈이다.

보수와 진보의 대표 선수 대결 구도로 진행된 이번 대선에서 당초 예상됐던 것과 달리, 높은 투표율을 보이자 진보 진영에선 승리를 조심스럽게 예측하기도 했다.

통상 투표율이 낮으면 여당 후보, 투표율이 높으면 야당 후보가 유리하다는 정치적 속설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대선 투표율은 75%에 달한다. 이는 지난 17대 대선 당시 63.0%에 비해 12%나 높아진 수치다.

15대 대선 이후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여온 대선 투표율이 상승세로 돌아선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국민적 관심과 참여가 높았다는 방증이다.

정책공약 대결이 아닌,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적 대결로 몰아간 정치권의 대선 전략이 흥행에도 성공했다.

‘박정희 대 노무현의 대리전’으로도 비교됐던 이번 대선 과정을 결과에 대입해보면, ‘유신독재의 딸’. ‘실패한 이명박근혜 정권’. ‘투표가 권력을 이긴다’는 전술을 앞세웠던 진보진영의 선거전략이 결정적 패착이다.

이같은 선거전략의 무용성은 이미 지난 2010년 총선에서 검증됐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 문제다.

지난 총선 당시 ‘정권심판론’을 앞세웠던 민주당이 ‘민생 안정론’을 내세워 박 후보가 이끌었던 새누리당에 참패했었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이번 대선에서도 ‘정권 심판론’을 다시 들고 나왔다.

여기에 박 후보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란 점을 부각시켜 ‘유신독재의 딸’로 몰아가며 현 정권과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정서 확산에만 주력했다.

하지만, 이는 진보진영의 정권 쟁취 우려라는 보수층의 위기의식을 촉발시켜 오히려 보수층을 결집시키는 요인이 됐다.

또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과오를 부각시키려던 진보진영의 전략은 되레 박 전 대통령 시절의 경제발전에 대한 공적과 향수를 일깨워 부동층의 박 후보 지지를 도와준 꼴이 됐다.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존경스러운 대통령 설문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해 온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정서를 오판한 것이다.

이와 함께 현 정권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잠재해 있으면서도,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은 무엇을 했느냐는 비판적 정서도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갈등과 분열만 야기했을 뿐, 정책적 대안도 제시하지 못한 채 당리당략에만 함몰돼 민심을 외면했다는 야권에 대한 비판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이번 대선이 박 후보의 승리로 끝난 과정에서 일등공신은 안철수와 이정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씨가 새정치를 기대했던 국민적 염원을 야권 단일화라는 명분으로 퇴색시킨 점과, 지지율 1%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주제파악도 하지 못한 채 TV토론회에서 언뜻 논리적이며 속시원한 비판으로 박 후보를 무너뜨렸다고 자화자찬한 이씨가 보수층의 결집을 이끌어낸 결정적인 요인이 됐다는 지적이다.

표면적으론 정치적 중립을 주장하면서도 늘 야권에 기생해 왔던 소위 ‘시민단체’들이 이번 대선 과정에서 문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커밍아웃한 점도 진보세력의 패인 중 하나다.

결론적으로 ‘야권+시민사회’의 진보대연합은 소리만 요란할 뿐, 이미 세력 확장 한계를 넘어섰음을 드러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그들이 선거 때마다 늘 주장해왔던 ‘숨은 표’는 이미 다 드러났으며, 오히려 ‘숨은 보수 표’가 적지 않았음이 이번 대선을 통해 진보진영에 던져진 교훈이다.

이번 대선 결과는 민심을 헤아린 정책적 대안 제시를 외면한 채 ‘반사이익’과 ‘외형적 소음’에만 치중한 진보세력의 오만과 독선을 향해 의식과 행동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로 해석된다.
<김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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