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종 호 논설위원·청주대 명예교수

2012 용띠해인 임진년(壬辰年)의 마지막 날이다. 한 해 365일의 끝 날(세밑)이다. 태양이 수평선이나 지평선으로 넘어가는 해넘이가 지나고 한 시간에 15도 씩 자전하는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공전을 마치는 시각에 제야(除夜)의 종소리가 울리면 한 해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세월은 날아가는 화살 같다느니 번갯불이나 부싯돌처럼 반짝 빛나고 없어지는(전광석화:電光石火) 시간 같다.’라는 등의 말이 실감난다.

올 해는 참으로 다사다난하였다. 나라 밖으로 눈을 돌려보면 세계 강대국들에는 쓰나미처럼 몰려 온 금융위기를 위시하여 재정절벽 현상이 초래되었고 어떤 국가는 미래보다 현재의안락 도모에 예산을 과잉 사용한 나머지 국가 파산의 위기에 봉착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중동지역에서는 국민끼리 종교적, 이념적 갈등으로 살상의 참극이 계속되고 있다. 세계의 평화와 번영이라는 말은 한낱 구두선(口頭禪)에 불과하고 지구촌 여기저기서 분쟁과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나라 안으로 눈을 돌려보면 한국도 몇몇 강대국들에 비하여 정도는 다르지만 침체의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불경기인데다 일자리가 부족하여 생활에 주름살이 늘어나고 서민들은 당장의 의식주 문제로 신음하고 있다.

그런데도 보수와 진보, 과거와 미래 세력 및 우파와 좌파 간의 대립 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부빈 간의 양극화도 심화되고 있다. 같은 국민이면서 동지와 적으로 나뉘어 이전투구(泥田鬪狗)하는 대칭구도가 고착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정치권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전혀 검증되지 않은 새 정치라는 바람이 무방비 상태에서 국민을 내편 네편으로 갈라놓고 의식세계를 혼란케 하였다.

무조건 이기고 봐야 한다는 고도의 집권야욕이 국민들의 건전한 양식과 행동을 뒤 흔들어 놓았다. 새 정치는 정치를 생산적이고 미래지향적이며 민본주의 등을 이념으로 하는 개념이라는 점에서 정치가 존재하는 한 인류의 태생부터 그리고 국가형성단계에서부터 반드시 구현되어야 하는 국정지표이다. 변화(개선)마인드를 가지고 오늘보다는 내일을, 내일보다는 그 다음날을 더욱 바람직한 방향과 내용으로 가치창조(정책 산출 및 집행)를 하자는 정치쇄신의 바람일 뿐인 것이다.

이렇듯 새 정치는 전혀 새로운 패러다임(세계관)이 아니다. 그런데도 마치 하늘로부터 여의주를 가져온 듯, 미지의 신대륙을 발견한 듯 요란 법석을 떤 것이다. 지금까지 국리민복을 위해 진력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부끄러워하고 반성하면서 환골탈태하려는 겸허한 자세를 취하기보다는 오로지 자신만이 성취할 수 있는 이상향인양 의기양양해 왔다.

거기다가 감수성이 강한 순진무구(純眞無垢)한 젊은 세대들이 면밀한 검토와 분석이 없이 추종을 하게 되니까 새 정치의 주장자들은 자기도취(나르시스)에 빠진 행각을 벌인 것이다.

이 얼마나 수치스러운 정치상이고 국민상인가. 이야말로 불성실의 극치가 아닌가. 이러한 현상은 아직 옥석을 가릴 만큼의 연륜이 되지 않았거나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아무 이유 없이 미워하는 승기자염지(勝己者厭之)의 나쁜 풍토가 깊게 뿌리 내리고 있는 사회에서 독버섯처럼 번지게 된 것이다.

정치는 행정, 문화, 환경 등을 비롯한 여타 분야의 최상위에 자리하고 있다. 때문에 정치의 물이 탁류로 흐르게 되면 여타 분야도 이에 영향을 받아 온통 흙탕물로 변질될 수 있다.

그렇기에 정치는 어느 분야보다 투명하고 순수하며 모범적이어야 한다. 고정관념에 묶여 갖가지 모략과 음해 등의 늪에 갇혀 있으면 아니 된다. 양식과 양심을 저버리고 이권과 권익 및 입지강화에 몰두하는 파렴치한(破廉恥漢)의 모습에서 탈피하여야 한다.

한 해를 마감하면서 고요한 가운데 자신을 점검하는 성찰(省察)의 시간을 갖자. 어둠의 그림자인 시기와 질투, 원망과 분노, 비난과 비방, 배타와 적개, 위선과 술수, 부정과 비리, 파벌주의, 폭력과 약탈, 불법과 탈법, 배타적 지역주의, 불공정 게임, 무임승차 심리, 책임전가, 독선과 독주, 야합과 이합집산 등의 부정적이고 반인격적인 사고와 행동 등을 모두 떨쳐 버리자. 제야의 종소리에 실려 멀리멀리 날려버리자.

그리하여 어둠의 자손이 아니라 태양의 자손으로서의 새해(계사년:癸巳年) 원단(元旦)을 맞자. 아침이 되면 동쪽에서 태양이 어김없이 떠오른다. 그 태양처럼 밝고 뜨거운 얼굴과 가슴으로 새해를 열자. 1년 내내 그 모습으로 살자 그리하여 2013년 세밑에서는 어둠의 그림자를 찾아 볼 수 없게 하자. 그리고는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자신의 마음(神性)’을 찾아 그 마음대로 살자. 개탁(皆濁)이 아닌 개청(皆淸)의 세상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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