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번방의 선물’ ‘내딸 서영이’ ‘아빠 어디가?’ 등 절절한 아빠사랑 스크린·브라운관 사로잡아

 2006년 관객 1300만 명을 모은 영화 ‘괴물’에는 ‘엄마’가 등장하지 않는다. 할아버지와 아빠만 있다.

당시 봉준호 감독은 “솔직히 말해 엄마가 등장하면 괴물을 잡아죽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에 엄마를 등장시키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강인한 모성애는 제아무리 괴물이라도 어떻게든 죽였을 것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허점이 많은, 다소 허술한 아빠들만 등장시켰다는 얘기다.

농반진반으로 받아들이며 폭소를 터뜨렸지만 일견 가슴에 확 와 닿는 말이었다. 부성애를 폄훼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모성애와 비교해 한 체급 아래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0년 조창인 작가가 선보인 소설 ‘가시고기’를 보면 부성애의 절절함도 끝을 달리니 아버지의 사랑이라고 다를 바는 없으리라.

2013년 안방과 스크린에서 부성애가 동시다발적으로 부상하고 있다. 사실 모성애를 조명한 작품은 흔할 정도로 많았기 때문에 부성애 코드가 눈에 띄는 것이긴 하지만, 드라마와 영화, 예능을 막론하고 부성애를 내세운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고 있어 눈길을 끈다.

KBS 2TV 주말극 ‘내 딸 서영이’는 아버지 이삼재(천호진 분)의 창자가 끊어지는 슬픔과 아픔을 조명하며 종영을 앞두고 최근 시청률이 46%까지 올랐다.

다음달 3일 막을 내리는 ‘내 딸 서영이’는 허황된 한탕을 좇아 평생 가족을 고생시킨 아버지가 뒤늦은 후회와 깨달음을 통해 모든 수모와 고통을 감내하며 딸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이야기를 그린다.

50부작인 이 드라마는 올 들어 지난달 6일 시청률 40% 벽을 돌파하면서 ‘국민 드라마’로 자리매김했고 지난 두 달간 시청률이 상승가도를 달리고 있다.

지난 24일 방송된 48부에서는 온갖 파고를 넘은 아버지가 행복을 목전에 두고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모습을 보여주며 끝까지 시청자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이삼재를 연기한 천호진이 22일 종방연에서 “30년 연기 외길인생을 걸었는데 이렇게 좋은 작품을 다시 만나기는 힘들 것 같다. 정말 행복했다”고 말했을 만큼 그도, 시청자도 회한 많은 아버지 이삼재에 감정이입을 깊숙이 했다.

지난 23일에는 부성애를 소재로 한 최루성 휴먼 코미디 영화가 1000만 관객을 돌파해 화제를 모았다.

한국영화 사상 여덟 번째로 1000만 클럽에 가입한 주인공은 류승룡 주연의 ‘7번방의 선물’. 개봉 32일

만에 누적관객수 1000만911명을 달성하며 1000만 고지를 밟았다.

톱스타나 큰 스케일을 내세우지 않은 이 영화가 1000만 클럽에 가입한 것도 놀라운데, 그 속도에서도 ‘광해, 왕이 된 남자’보다 6일 먼저 1000만 관객을 모아 화제다.

순제작비 35억원, 홍보마케팅비를 합쳐도 총제작비 58억원에 불과한 이 영화는 무려 700억원 이상의 입장권 매출을 올리며 역대 1000만을 넘은 한국영화 8편 중 최고 수익률을 자랑하고 있다.

영화는 6세 지능의 천사 같은 아빠 용구(류승룡)와 7세의 똘똘하고 예쁜 딸의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를 그린다. 살인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 갇힌 용구와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딸이 생이별하게 되는 과정은 객석에 눈물 폭탄을 터뜨린다.

오랜 무명 끝에 뒤늦게 빛을 보기 시작한 주인공 류승룡은 비록 남들이 ‘바보’라 손가락질하지만 딸 사랑에 있어서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부성애를 표현하며 감동을 준다.

예능 프로그램도 있다. MBC TV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새코너 ‘아빠! 어디가?’는 제목에서부터 아빠를 내세운다.

지난달 6일 첫선을 보인 ‘아빠! 어디가?’는 회를 거듭할수록 상승세를 타더니 지난 17일과 24일에는 2주 연속으로 SBS ‘일요일이 좋다-K팝 스타’와 KBS 2TV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을 제치고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

장기간 침체의 늪에서 허덕이던 ‘일밤’을 구원해 준 것은 물론이고, 아빠와 아이의 시골여행이라는 콘셉트를 통해 부성애를 부각시키며 신선함을 주고 있다.

평소 바빠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적은 아빠들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와 살을 맞대고 어울리며 더욱 친해지고, 게임 위주의 리얼 버라이어티나 오디션 프로그램에 식상함을 느낀 시청자들은 꾸밈없는 가족의 모습에서 따뜻함을 느끼고 있다.

연출을 맡은 김유곤 PD는 “‘아빠! 어디가?’는 큰 틀에서 아빠라는 존재에 대한 프로그램”이라며 “아빠가 갈수록 아이와 멀어지고 함께 하는 시간이 적어지는데 여행을 통해서 아빠의 존재를 알아볼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그런 가운데 아이들의 밝은 모습을 보여주는 걸 목표로 했다”고 밝혔다.

또 있다.

MBC 수목극 ‘7급 공무원’의 독고영재, MBC 주말극 ‘백년의 유산’의 정보석, KBS1 일일극 ‘힘내요 미스터김’의 김동완은 모두 아버지의 사랑을 몸으로 연기하고 있다.

아들의 안전을 위해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딸의 일이라면 물불 안 가리며, 조카를 딸처럼 키우고 그에 더해 피 한방울 안 섞인 3명의 아이까지 품에 안으며 키워나가는 이들 아버지의 모습이 시청자를 사로잡고 있다.

방송 관계자들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가부장적인 아버지상이 퇴조하고 부드러운 아버지상이 부각하면서 아버지의 사랑을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됐다”며 “이런 흐름에 맞춰 부성애에 초점을 맞춘 작품들이 나오는 것 같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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