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수 길 논설위원·소설가

조선일보 미디어리서치의 여론조사(3. 6)결과에 의하면, 안철수씨가 신당을 만들 경우, 그 지지도가 새누리당 36.1%, 안철수신당 23.6%, 민주통합당 10.6%란다. 그보다 먼저, 다른 여론조사기관의 발표결과는 안철수신당과는 무관한 시기였는데도, 새누리당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40%에 머물러 있었다. 52%의 과반지지로 당선, 취임 한 달도 되기 전에 12%가 급락한 것이다. 민주, 새누리 양당은 물론 대통령 지지도까지 동반하락한 원인은 뻔하다.

정권이 바뀌면 언론은 물론 야당이나 국민도 한 달 쯤은 새 정부의 일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이른바 밀월기간에는 새 대통령, 새 정부의 출발을 격려하며 언론은 비판을 자제하고 야당은 가능한 협력한다. 물론 국민들도 기대를 잠시 유보한 채 조용히 지켜본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밀월은 사라졌다. 16대 노무현 대통령은 언론과의 불화로, 17대 이명박 대통령은 한미FTA 강행여파로, 현 박근혜 대통령은 정부조직법문제로 야당에 발목을 잡히는 바람에, 언론과 국민의 인내심이 한계를 넘어 지지도 동반하락을 자초한 것이다.

미디어리서치 조사에서, 잉태 전 안철수신당이 23.6%를 차지한 반면, 과반지지로 대선에 승리한 새누리당은 36.1%, 패배했을망정 42%의 지지를 얻었던 민주당이 10.6%로 주저앉은 건, 대선 후에도 답습되는 정치구태에 국민들의 넌덜머리가 가시지 않았다는 증거다.

다 제쳐 두고, ‘특권을 내려놓고 봉사하겠다던 선거 당시의 공약만 지켰더라도, 정치쇄신을 바라던 국민들의 실망이 이리 크지는 않을 것이다. 여야 모두가 입만 열면 국민을 앞세우지만, 그들의 의중엔 애초부터 국민이란 존재가 들어있지 않았던 것이다. 국익보다 당리당략을 위한 기 싸움, 세력 확보를 위한 끼리끼리 단합으로 목청높이기에 열중했을 뿐이다. 5년간의 국정, 아니 국가 미래상을 그리는데 골몰해야할 정권초기인데, 정부는 손발 없는 불구상태다. 도대체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S) 인허가권은 뭐고, 국회는 뭘 하는 곳인지, 정부조직법을 본회의 상정도 못한 채 국정을 마비시키고 있다. 의원 특권 내려놓기는 말짱 헛소리가 됐고, 국회선진화법은 의장직권과 국회기능에 제동을 거는 족쇄가 됐다.

북한의 장거리 로켓발사와 3차 핵실험에 대한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결의(2087, 2094) , 북의 발악은 극에 이르렀다. 미국본토에 핵미사일을 날리겠다는 도발엄포가, 실은 우리를 1번 타킷삼는다는 걸 부인할 사람은 없다. 전면전도 불사하겠다는 북의 발악적인 도발에 대비해야 할 우리는 정권인수 2주가 넘도록 국무회의 한번 열지 못했다. 안보대책을 논의해야할 국가위기관리상황실 역시 회의에 참석할 인원구성조차 안 된 채 비어 있다. 국민을 폭탄 앞에 세워놓고도 정치인들의 위기의식은 실종, 미로를 방황하는 중이다.

불안하고 답답한 이 분란의 원인이 뭔가? 대선 패배 후의 낭패감과 내부갈등을 희석시키려는 야당의 정국기선잡기 작전 탓인지, 아니면 원칙을 바꿀 줄 모르는 대통령의 불통의 소신 탓인지, 누구도 단언이 어렵지만, 위기에 정부가 발목을 잡혀 있다는 건 엄연한 사실이다.

야당은 그렇다면 소신대로 해 보시라.’그러고 상황추이에 따라 비판하거나 개선을 요구한다면 얼마나 너그러워 보일까? 애간장을 태웠던 대선지지율이 껑충 뛰어올랐을 것이다. 여당과 대통령은 당신들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고 수용하는 아량을 보인다면 정권초반의 의욕적인 출발로, 과반지지에 확신도장을 찍었을 것이다. ‘(작은 것에)지는 것이 (큰 것을)이기는 것이라는 소박한 진리를 따랐더라면 정국이 이리 엉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제(3.11), 청문회를 통과한 13명의 장관이 임명 됐다. 비로소 헌법에 규정 된 국무위원 과반수(15)을 확보, 일부 부처는 차관을 참석시켜 첫 국무회의를 열었다. 그러나 정부조직법에 묶이거나 청문회 통과전인 몇 개 부처의 장관의자는 공중에 떠 있는 셈이다.

핵을 쏘겠다는 적의 협박을 듣고도 위기를 깨닫지 못하는 나라. 방송장악권(?)을 놓고 옥신각신, 각료 없는 정부를 출발시킨 나라. 특권 내려놓겠다던 의원들의 구태답습에 온 국민이 넌덜머리를 내는 나라. 국민지지도가 태어나지도 않은 신기루당의 절반도 안 되는 제1야당이 정부발목을 잡는 나라. 청문회장에서 입각후보의 정책비전 보다 비리 들추기에 더 열을 올리는 나라. 고국에 봉사하겠다고 귀국한 인재를 청문회 전 입방아로 녹초를 만들어 쫓아내는 나라. 국가정체성을 부인하고 적을 비호하는 불순세력이 의회에 들어앉아 세금을 퍼 가는데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나라. 참 희한한 나라다. 도대체 뭘 하자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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