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연기 항국교통대 교수

야구팬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지는 대회 중 하나가 WBC(World Baseball Classic)이다. 벌써 3회째를 맞이하는 이번 대회에서 우리나라 대표팀이 네덜란드에게 당한 뜻밖의 일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예선에서 탈락한 것에 대해 이래저래 말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의례 이런 결과에 대한 해석이 그러하듯 감독의 역량 부족, 선수들의 정신력 해이, 심지어는 해외파 선수들의 불참에 따른 병역특례 이후의 ‘먹튀’ 논란과 같은 경기 외적인 요인까지 지적되는 등 한국 야구계가 벌집 쑤셔 놓은 듯하다. 어찌 보면 네덜란드 전에서 벌어졌던 단 한 번의 패배로 인해 한국야구 전체의 수준이 의심 받는 일이 벌어졌는데 이와 같은 진단이 합리적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WBC는 메이져 리그에서 미국 국적이 아닌 선수의 진출이 점점 늘어감에 따른 야구계 전체의 비즈니스 확대를 위해 국제화가 불가피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한 대회이다. 미국 메이져 리그 사무국이 주도한 WBC는 처음에는 야구 월드컵이라고 명명하려 하였으나 국제 야구연맹에서 그 명칭을 이미 사용하고 있는 관계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가 2011년 야구 월드컵을 폐지하면서 WBC가 세계야구선수권대회의 지위를 넘겨받게 되었다. 그 결과 2006년 제1회 대회가 개최되었고 제2회 대회를 2009년 3월, 그리고 이번 제3회 대회가 2013년 3월에 개최되었다. 정작 WBC를 추진하였던 미국 내에서는 그동안 대회에서 거두었던 부진한 성적 때문에 인기가 없다고도 볼 수 있지만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3국에서는 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야구 국가대항전이 되었다.
그런데 미국이 WBC에서 부진한 성적을 거두었다고 해서 그 누구도 미국의 야구 수준에 대한 논란을 제기한 적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2회 대회에서 우리나라가 일본과 대등한 경기를 펼친 결과 우리나라의 야구수준이 일본에 근접했다고 평가한 적이 있지만 정말 그러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의 고교야구 팀 수는 대략 4천여 개가 넘고 우리보다 그 수준이 못하다고 평가받는 대만의 고교야구 팀 수가 1,200여개인데 반해 우리나라 고교야구 팀 수는 고작 50여 개에 불과한 것을 보면 그간 우리가 WBC에서 거두었던 성적은 참으로 대단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야구 인프라로 따져보면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구장 수가 일본은 약 500여개가 넘고 우리는 고작 십여개 수준에 불과하여 비교하기조차 초라한 실정이다. 분명한 것은 우리나라 대표팀 수준의 팀을 우리는 하나 밖에 만들 수 없지만 일본은 여러 개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차이가 아닐까 싶다.
한편으로, 우리나라가 이번 3회 대회에서 대만과 네덜란드에 밀려서 예선 통과를 못한 상황을 두고 기다렸다는듯 ‘한국 야구 이대로 좋은가’라는 식의 평가가 이어지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일반적으로 점수가 적게 나는 스포츠 종목일수록 약팀이 강팀을 이길 수 있는 의외성이 많다고 한다. 축구가 대표적인데 과거 우리나라가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이태리를 이겼다고 해서 우리의 축구 수준이 이태리보다 높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한 연유로 이번 우리 대표팀이 네덜란드에 졌다고 해서, 대만에 밀려서 예선통과를 하지 못했다고 해서 우리나라 야구 수준이 과거에 비해 떨어졌다고 하는 것은 지난 20년 동안의 프로야구를 통해 끊임없이 발전해온 우리 야구계의 수고를 무시하는 처사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야구는 투수놀음인지라 생소한 투수나 기량이 몹시 뛰어난 투수 한둘을 보유하고 있다면 단기전에서의 승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WBC 대표팀이 중도 귀국을 하면서 공항에서 국민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연발할 필요는 없다. WBC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행여 문제점이 있었는지 되돌아 볼 필요는 있지만 그들은 충분히 수고했고 프로로써 최선을 다했다고 믿기에 격려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결과만을 가지고 섣불리 평가하는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로 인해 우리 야구 대표팀, 나아가서는 우리 프로야구계가 비난 받아서는 안 될 것이다. 스포츠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잘 할 때에는 어떠한 비판도 인정하지 않다가 잘 안될 때에는 누구나 할 것 없이 침소봉대하는 우리 사회의 가벼움에 대해서도 한 번쯤은 돌아봐야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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