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준(청양군 목면 부면장)

어린 시절, 하릴없이 쪼그려 앉아 개미를 관찰해 본 적이 있다. 조그만 것들이 질서정연하게 줄을 지어 이동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슬그머니 장난기가 발동해 막대기로 줄을 흩트려 봐도 대열은 금방 회복됐다. 작은 개미들이 어떻게 일사불란함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일이지만 개미는 DNA에 각인된 본능적인 사회성을 기반으로 그들만의 삶을 이어간다고 한다. 여왕개미, 수개미, 일개미 등 맡은 역할에 따라 분업구조를 가지고 사회를 유지해 나간다는 것이다. 자연의 세계는 오묘하다. 수천 만년을 살아오면서 삶의 방식을 진화시켜온 영리한 개미사회는 우리 사회의 복잡한 모습을 뛰어 넘는다.

그렇게 일사불란한 개미도 종종 오류를 일으키는 경우가 있으니 ‘원형선회’현상이 그것이다. 원형선회 현상은 개미들이 큰 원을 그리며 돌기만 하다가 결국은 모두 죽게 되는 병리현상을 일컫는다. 의도하지 않은 집단 자살이다. 앞에 가는 개미만 따르면 된다는 규칙만으로 움직이는 곤충의 본능이 그 비극의 시작이다. 선두에 선 개미가 길을 잘못 들면 나머지 개미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떼죽음의 사이클로 빠져 드는 것이다. 

개미사회에 집단 병리현상 '원형선회'가 있다면 인간사회에도 그에 필적할 정신적 병리현상 '집단사고'가 있다. 집단사고는 집단주의가 극단으로 흐를 때 생기는 현상이다. 예일대 심리학과 교수였던 어빙 재니스는 조직 구성원들의 의견 일치를 유도하는 경향이 지나쳐 비판적인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성향을 가리켜 집단사고라고 정의했다.

개미처럼 인간도 사회적 동물이다. 인간이 무리를 이루어 살기 시작하면서 사회적 동물로 진화해왔다. 사회적 동물에게 중요한 것은 개체 보다는 무리의 존속이었다. 사회적 동물은 자신보다 무리를 위하여야 한다는 동물적 본능이 존재한다. 집단사고도 그렇게 발생되고 존속돼 왔을 것이다.

집단주의는 구성원들이 어떤 판단을 내릴 때 만장일치를 이루려는 경향이 강하다. 개미처럼 어느 한 방향으로만 치우치는 현상이다. 응집력이 강한 집단일수록 이런 경향이 심하다고 한다. 집단사고가 형성되면 그 집단의 대표나 구성원 다수의 생각과 행동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비윤리적이거나 비합리적인 결정도 집단의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이들은 토론을 달가워하지 않으며 목소리가 큰 일부의 주장에 집단 전체가 휩쓸려 버린다. 이런 분위기에서 반론도 쉽지 않지만 설령 반론이 제기된다 해도 쉽게 묵살된다.

집단사고는 구성원들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없도록 의사를 왜곡한다는 게 문제다. 개인의 다양한 생각은 무시되고 오직 집단의 목표에만 치중한 나머지 비합리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경향이 추세를 형성하게 되면 거기에서 벗어나 현실을 제대로 바라볼 가능성이 점점 적어진다. 자기 생각이 없는 인간들의 병든 집단이다.

집단사고는 정신적인 원형선회 현상이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끝없는 동종 근친교배를 계속한 끝에 결국 그 사회는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고인물은 썩는 법이니까.

인간은 어느 사회엔가 소속돼 살아가야 하는 한 집단적 사고의 편향에서 자유롭기란 쉽지 않다. 그러므로 스스로 집단사고의 폐해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누군가 반기를 들어야 한다. 죽음의 원형선회 프레임을 깨야 한다. 집단성원 누구의 의견이든 그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이 가능해야 한다. 자유로운 의견 제시가 치유의 실마리다.  

생각이 다양한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다양한 의견은 많이 모일수록 그 효과가 커지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배경과 견해를 가진 사람들,  생각하는 방식이 다른 다양한 사람들이 모일 때 비로소 창의적인 대안이 나올 수 있다. 성별, 연령 등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특징의 다양성보다 훨씬 중요한 게 생각하는 방식의 다양성이다. 생각하는 방식의 다양성은 획일화 되지 않은 구성원들에게서 나온다.

사회가 건강하려면 구성원들이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고 이런 의견들이 창조적으로 통합되어야 한다. 다양한 의견들이 섞이고 통합돼야 시너지 효과가 생긴다. 일사불란한 응집력을 자랑하는 사회에서는 시너지가 없다. 리더의 의견을 메아리처럼 반복하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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