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수길(논설위원, 소설가)

 감탄고토(甘呑苦吐),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별로 안 좋은 뜻으로 쓰는 말이지만, 상거래나 외교가에서는 기본수칙이요 생리다. 이를 외면하는 기업이나 국가운명은 예측불허다.
 사면초가(四面楚歌), 초한전(楚漢戰) 때 유방의 교란작전에서 유래된 말로 주변이 모두 적이라는 뜻이다. 세계가 한 지붕이라지만, 국익을 다투는 외교무대에선 상대국이 서로 우방인 동시에 적이다. 공동의 이익을 논할 때는 우호적이지만, 상충되는 사안을 논할 때는 적대적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인근우방이 곧 사면초가로 돌변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북, 미, 중, 일, 러. 우리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북핵 6자회담국들의 상호관계도 물론 그렇다. ‘북 핵 저지’라는 공동목표 앞에서는 각국이 우호협력관계를 유지하지만, 자국의 이익을 다툴 때는 서로 경계하는 적대적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감탄고토의 외교생리 때문이다.  
 북한은 우리와 가장 우호적 관계여야 하지만, 비상식적이고 광적인 도발로 일관하는 북의 행태 때문에 합리적 접근방법이 없으니, 항시 적대적 긴장관계를 피할 수없는 상황이다.
 미국은 한국에, 러시아와 중국의 팽창을 견제하기위한 발판을 마련할 필요에서, 우리는 한반도 평화유지를 위한 안보 면에서 상호협력이 불가피하므로, 견고한 우방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시각을 달리하는 핵협상 등에서는 긴장을 늦출 수없는 관계다.
 중국이 북한을 포기하지 못하면서도 한국과 손을 잡는 것은, 한국이 독일식 통일을 이룰 경우, 순망치한(脣亡齒寒)으로 자국에 미칠 불이익, 한반도에 발판을 둔 미국의 아시아권 영향력확대를 막는 데 불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북공정이란 미명하에 역사를 왜곡, 고구려 옛 땅을 욕심내는 건, 우리에 대한 분명한 적대적 행위요, 경계대상인 것이다.
 일본은 우리에게, 가장 노골적으로 우호와 적대의 두 얼굴을 드러내는 존재다. 중국의 세력팽창에 가장 민감한 위치에 있으니, 미국은 물론 한국과도 우호적 관계를 소홀히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리 경제 문화면에서도 역시 그렇다. 하지만 독도영유권주장이나 역사를  왜곡 하는 망언, 망동으로 우리를 분노케 하고 긴장시킨다.
 러시아는 연방붕괴로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됐지만, 미국의 영향력 확대를 경계하는 건 중국이나 다름없다. 남북한 어느 한 쪽에 치우칠 수 없는 처지니 우리와도 우호관계를 수립해왔다. 언젠가, 양극화시대 공산권맹주였던 명예회복을 꿈꿀 때는 주저 없이 등을 보일 것이다. 
 한반도 주변에 얽히고설킨 문제들은 세계 어느 분쟁지역 못잖게 복잡하다. 6자회담 공통의제는 ‘북 핵 저지’ 단 하나지만, 그 이면엔 각국의 서로 다른 저의가 잠복 돼 있다. 어쩌면 6자회담의 난관봉착은, 북의 생떼 못지않게, 총론합의 후에 각국의 이해가 얽힌 각론의 감탄고토가 더 문제인지도 모른다. 포화전이 아닌 설전이라도 다섯이 하나를 제압하지 못한다면, 미구에 제구실 못하는 6자회담무용론이 대두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그 뒤의 우리 상황은 그야말로 사면초가요 백척간두다. 북의 핵폭탄은 머리 위에서 대롱거리고, 일본은 우경화 재무장에 독도영유권과 침탈부정으로, 중국은 동북공정으로 우리의 자존심을 긁고 영해 침탈을 노린다. 북의 생떼에 진저리를 낸 미국은 너희 스스로 해결하라 손을 떼고, 러시아는 강 건너 불구경 하면서 과거의 맹주자리 복귀를 노린다. 물론 일부는  가정(假定)이지만, 절대 그런 상황이 오지 않는다는 장담은, 북의 전면전 위협이나 핵폭탄 발사가 엄포에 그칠 거라는 주장과 함께 안이한 발상이다. 설사 가정의 현실화 가능성이 희박하대도, 현재 우리 상황은 초긴장상태다. 아니 현재 뿐만 아니라 항시 그래야 했다. 덫에 발목을 치인 격인 개성공단 문제는 우리가 긴장해야하는 사유중의 일부일 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뭘 하고 있나? 맥아더동상 철거를 외치고 친일인사색출이나 이승만과 박정희 폄하에 열을 내며, 천안함피격 사실부정과 제주해군기지건설을 반대하는 인사들이 애국자연하고 있다. 국가정체성을 부정하며 선거를 ‘돈 따먹기’놀음으로 만든 인사들이 민족애를 외치고 있다. 외부로 돌려야할 화살을 내부를 향해 쏘면서 국론통합에 도리깨질을 하고 있다. 그토록 치열한 애국자라면 일본정부에 한민족 박해원흉명단이라도 보내 처벌을 요구하고, 그토록 뜨거운 민족애라면, 북한에 주민인권개선, 핵개발중단을 요구해야 마땅한데,  그건 함구다. 이들의 준동은 사면초가 못지않는 위기다. 초한전에서 항우(초)의 패인은 내부붕괴였다. 사면초가는 유방(한)의 교란책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둘 다 현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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