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논설위원, 소설가)

 영식이가 오는 날이다. 엄마들 마음이 아침부터 설렌다. 오늘은 읍내축제 구경을 가기로 돼 있다. 영식이가 보름 전에 엄마들을 읍내목욕탕에 단체로 모시고 갔을 때, “다음엔 우리 읍내 축제날 엄마들을 모실게요. 그날 품바패들이 나와서 재밌게 익살을 떨 겁니다.” 했던 것이다. 그때 한 엄마가 불쑥 “품바패가 뭐여?” 해서, “앗따, 각설이패 몰러 거렁뱅이들 말여.” 하고 여럿 엄마들이 몰아세우니, “얼래, 여태꺼정 거러지들이 있단 말여?” 하며 머리를 갸웃거렸다. “거짓부렁거러지들 말여, 거짓부렁으로 거러지를 꾸며서 한바탕 질펀하게 논다 이거여. 이러면 알겄어?” 그러자 그 끝에 영식이가 사뭇 침통한 얼굴로, “그날은 살구나뭇집 엄마도 나오시면 좋을 텐데….” 하고 말끝을 흐렸었다. 오늘은 그 살구나무집 엄마도 가기로 돼 있다. 그래서 영식이를 기다리는 엄마들의 마음이 한결 더 가볍고 즐겁다.


 살구나무집 엄마는 영식이가 처음 엄마들을 나들이에 모실 때 앵 토라졌다. “동네 어머님들, 우리 엄마 병석에 계실 때 친동기간처럼 돌봐 주신 일 참으로 고마웠습니다. 엄마 돌아가실 때 저에게 간곡히 말씀하셨습니다. ‘동네 안 어르신들 생전에 에미 모시듯 극진히 모셔야 된다.’고요. 그래서 모시는 방법을 연구해 봤는데 오늘같이 이렇게 어머님들을 모시고 가끔 나들이를 가는 게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첫 번째로 어머님들 예쁘게 해 드릴려고 단체로 읍내 미장원으로 모시겠습니다. 물론 비용은 다 제가 댑니다. 어머님들은 맨몸으로 나들이 가시는 걸로 여기시면 됩니다. 어머님들은 다 제 엄마 같은 분들입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그냥 엄마라고 부르겠습니다. 아니 친엄마로 모시겠습니다. 괜찮겠습니까?” 모두들 “그럼, 그럼, 웨래 고맙지.” 했는데 한 사람 살구나무집 엄마가 반기를 들었다. “난 아녀. 싫여. 이 멍텅구리 할망구들아, 우리가 왜 영식이 엄마여. 그럼 우리가 모두 너나 할 것 없이 영식이 아범 마누라란 말여. 택두 없는 소리 난 아녀. 산 싫여!” 이에 엄마들이 모두 들고 일어났다. “저, 저, 저 어거지 좀 봐, 아무리 영식이 아버지와 앙숙이로서니 그래 그렇게 끌어다 붙여야 속이 션하겄어. 괜히 속에 없는 소리 하지 말구 영식이 봐서래두 맘 돌려!” “속에 없는 소리, 그느므 영감탱이하구 얽혔던 일만 생각하믄 속에서 불이 확확 나는데. 아무튼 난 싫여 빠질껴.” 살구나무집 엄마 편에서 보면 그럴 만도 했다. 영식이 엄마가 장병으로 누워 있을 때 살구나무집 엄마는 다른 엄마들보다 유별나게 영식이네를 드나들었다. 아픈 몸으로 영식이와 영식이 아버지 뒷바라지를 못하고 끌탕을 하는 영식이 엄마를 보고 성질이 좀 까탈스럽기는 하나 인정이 많은 살구나무집 엄마가 대신 그 집 빨래며 끼니를 자주 해주고 강아지밥까지도 챙겨 주곤 했다. 그런데 그게 다른 이들 눈에는 별나게 보였던지, ‘아무래도, 아무래도….’ 하며 영식이 아버지와의 별난 관계에다 결부시키더니, 물색 모르고 그저 살구나무집 엄마가 고맙기만 해서 친절하게 대하는 영식이 아버지의 태도를 보고 는 ‘틀림없다’로 규정짓고 말았다. 이 소문에 발끈한 살구나무집 엄마는 그 소문의 단서가 영식이 아버지의 그 친절하게 대해 준 그 태도에 있었다고 보고 , 또 그 친절의 속내엔 자기에 대한 음흉한 마음이 도사리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고 단정하고선 그길로 영식이 아버지와의 앙숙관계로 들어섰던 것이다. 살구나무집 엄마는 그 첫 번째 나들이 때 앵 토라진 이후 그간 4번의 나들이 모두에 빠졌다. 그래서 영식이가 읍내 축제 때는 살구나무집 엄마도 나오시면 좋을 텐데 하고 침울해 하는 것을 보고 이튿날 엄마들이 살구나무집 엄마를 찾아갔다. “여게 살구나뭇집, 인제 영식이네와 맘 풀어. 다 지나간 일이고 그간 서로의 오해에서 어긋났던 일들여. 인정 많은 자네 아닌가. 그리구 영식이 말여 돈 많구 시간 남아돌아 우리를 그렇게 모시는감 제 엄마 때 생각해서 제 차루 우리 일곱 늙은이들 모시려는 거 그거 그리 쉬운 일 아녀. 얼마나 대견하고 고마운가. 이번엔 영식이가 자넬 꼭 모시고 싶다고 해서 자넬 찾아온 걸세.” 이래서 살구나무집 엄마의 마음을 돌려놓은 겄이다.

 마침내 영식이의 12인승 승합차가 경로당 앞에 도착했다. “여보게 영식이, 오늘은 살구나뭇집 엄마도 나왔네. 좋지 좋지?” “그럼요, 그럼요. 살구나뭇집 엄마 고맙습니다. 오늘은 백퍼센트 참석, 특별한 나들이라 기분이 더 좋습니다. 자 출발합니다.”

 다음 나들이 날짜와 장소는 이따가 영식이가 또 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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