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준(청양군 목면 부면장)

아들 녀석이 유럽에 다녀왔다. 자전거를 끌고 길을 나선지 97일만이다. 녀석은 석 달 넘는 긴 시간동안 지구 반대편에서 낮 모르는 길을 홀로 달렸다. 외롭지는 않았을까. 마음이 짠하다. 젊으니까 가능한 일이겠지. 언제든 마음먹은걸 저지를 수 있는 녀석의 젊음이 부럽다.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서 하루 전에 출발했다는 카톡이 떴다. 모스크바를 거쳐 하루 만에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팔다리는 거의 흑인에 가깝고 얼굴도 초췌해 보인다. 한양에서 낙방하고 내려온 이몽룡 꼴이라고 농담했더니 이젠 텐트 잠자리 걱정 안 해도 되겠다며 웃는다. 짐을 옮겨놓고 점심 한 끼 사주고 내려왔다. 다음날이 바로 개학이었다.

녀석의 자전거 여행은 족보가 있다. 고 3때 처음 남도기행을 떠났다. 혼자였다. 대학교 1학년 여름에 제주도를 한 바퀴 돌더니 1년 후에는 자전거를 끌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 여행 중 자전거가 고장나는 바람에 힘든 시간을 보냈다. 정 떨어져서 다시는 자전거를 쳐다보지 않을까 싶더니 웬걸 이번에는 석 달 넘게 지구의 반대편을 돌다 왔다.

이번여정은 길었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시작해 프랑스, 스위스를 거쳐 독일과 체코, 폴란드, 슬로바키아, 오스트리아, 헝가리를 거쳐 종착지인 크로아티아를 거쳐 오는 거의 전 유럽을 일주하는 장거리 코스였다. 기독교 문화의 본산 유럽대륙을 몸으로 부딪히며 그들의 삶을 느껴보자고 호기롭게 떠난 여행이었다. 사람을 만나 소통하고 싶어 했다.

짐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나머지는 현지에서 부딪히며 해결한다고 했다. 스마트 폰에 지도를 저장하고 모든 여행기록도 스마트폰 하나로 통일했다. 가끔 와이파이 되는 곳에서 카톡으로 소식을 주고 받았다. 

이번 여행은 일정만큼 준비기간도 길었다. 올 초부터 대학원 1학년을 휴학하더니 석 달 반 동안 공사장에서 품을 팔아 여행자금을 마련했다. 제 힘으로 준비하겠다는 여행 계획에 초를 칠까 봐 도와주겠다는 말은 꺼내지도 못했다. 녀석은 계획에 따라 미리 구입해놓은 마드리드행 저가 항공권을 바라보며 힘든 공사장의 하루하루를 버텼을 것이다.

녀석의 유럽행은 집에서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제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이려니 했다. 떠나고 싶으면 늘 떠나던 녀석이니. 오히려 주변에서 아는 분들이 먼 길을 혼자 보내도 되겠느냐며 걱정을 많이 했다. 어릴 때부터 교육방침이 자유방임형이었다. 말이 좋아 방임형이지 그냥 저하는 대로 놔뒀다는 말이 옳겠다. 집에서는 녀석이 손 내밀 때만 도와줬다. 나머지는 저 혼자 알아서 했다. 힘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옳다고 믿었다. 자라면서 차츰 손 내미는 일도 적어졌다. 

여행을 시작한지 한 달 쯤 지났을까. 독일에서 자전거 사고가 났다는 카톡이 떴다. 앞에 달리던 차가 커브를 꺾으며 급정거 하는 바람에 차 뒤를 추돌해 버렸단다. 다행히 몸은 무사했지만 티타늄 자전거 프레임이 조각나 버렸다. 티타늄 프레임은 녀석이 석 달 동안 라면만 먹어가며 구입했다는 거다. 제 방안에 자전거 스텐드를 세워놓고 늘 애지중지하며 바라보던 보물단지였다. 보물단지는 옛날 이야기속의 명마처럼 위기에서 제 몸을 던져 주인을 구하고 장렬히 산화했다. 제 유럽 여행의 꿈처럼 화려했던 칼라풀 티타늄 프레임과 인연은 거기까지였을까.

자전거 여행에서 자전거가 사라졌으니 이보다 난감한 일이 없다. 남은 돈은 자전거가 있어야 일정을 겨우 버틸 정도로 달랑달랑했다. 여행  최대의 위기였다. 여행을 계속하느냐 기로에 섰다. 녀석이 카톡으로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너는 어떻게 하고 싶냐고 되물었다. 여행을 계속하고 싶다했다. 그렇겠지. 그게 어떻게 시작한 여행인데... 긴급 공적자금(?)을 지원했다. 녀석은 툴툴 털고 다시 일어섰다. 지원받은 자금으로 독일에서 생활 자전거를 구입해 남은 여정을 계속했다.

그즈음 사진을 보면 유럽 어느 기차역 플렛 폼에 검은 패니어 가방과 빨갛고 노란 바퀴두개가 덩그러니 서있다. 아끼던 자전거를 잃은 허탈함과 쓸쓸함이 한꺼번에 묻어나는 사진이다. 여행은 돌발 변수의 연속이다. 순탄한 여정 같은 거 있을 리 없다. 누구나 집 떠나면 고생이다.

순탄한 삶은 또 있기나 하던가. 중요한 것은 문제에 직면하여 그걸 풀어나가는 지혜다. 지혜는 때로 전화위복의 역전도 만들어 낸다. 넘어지면서 깨닫고 다시 일어서는 삶의 자세. 그게 삶의 묘미 아닌가. 석 달 동안 라면만 먹으며 구입했다는 자전거 프레임을 눈물로 수습하면서 녀석은 무엇을 깨달았을까. 앞으로 만나게 될 숱한 삶의 파도들을 거스르지 않고 용기있게 마주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스마트폰으로 찍어온 여행기록을 USB에 담아왔다. 50기가가 넘는 양이다. 방대한 사진들은 온통 길 사진이다. 넓은 대로가 보이는가 했더니 시골길이 이어지고 땡볕아래 자동차가 가득한 페이브먼트가 있는가 하면 한적한 자작나무 숲길도 나타난다. 맑은 날과 흐린 날이 교차되고 빨간 지붕 마을을 배경으로 고흐의 밀밭 길도 보인다. 녀석이 찍어온 사진은 세상 모든 길을 펼쳐놓은 전시장 같다.

날이 밝으면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고 어두워지면 잠자리를 찾아 한적한 들판에서 혼자 묵었다고 했다. 길은 끝나는 곳에서 다시 다른 길로 이어진다. 하루가 지나면 다시 끝없이 이어지는 길 위에서 녀석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녀석이 길 위에서 느꼈을 숱한 외로움들이 스마트폰에 찍힌 길을 통해서 고스란히 전해온다. 다시 속이 짠해진다.

녀석은 여행경비를 아끼려 텐트를 가져갔었다. 텐트를 통해 사람을 만나고 싶어 했다. 가끔 숙식을 제공한 따뜻한 분들도 있었다고 했다. 마드리드 공항에서 자전거조립을 도와준 젊은 친구들, 부다페스트 기차에서 만난 할아버지, 프라하에서 2년 동안 여행하고 있다던 일본사람, 여행 중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졌다. 오랜 여정에서 만난 고마운 사람들이 있기에 계획한 자전거 여행을 모두 마칠 수 있었으리라.

녀석이 긴 여행에서 무엇을 얻어왔는지 아직 알 수 없다. 가끔 녀석의 페이스 북을 힐끗거리며 여행지에서 느낀 짧은 소감들을 통해 짐작할 뿐이다. “내 삶은 세상에 비하여 참 작았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크고 작은 성공과 실패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오늘을 간절히 사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하다. 하늘만큼 땅만큼 간절히 살자.” 제법 묵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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