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으로 조선 중기를 풍미한 엄청난 독서가인 백곡(栢谷) 김득신(金得臣, 1604-1684).
그는 타고난 둔재였던 탓에 깨달음이 남달리 적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칠 줄 모르는 엄청난 열정으로 책읽기에 몰두해 글을 읽고 또 읽었다.
오히려 글 읽기가 무식하다고 할 정도로 당시에도 꽤나 유명했기에 친구들이 그의 노력에 대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글 중에"한유(韓愈)의 획린해(獲麟解), 사설(師說), 송고한상인서(送高閑上人序), 남전현승청벽기(藍田縣丞廳壁記), 송궁문(送窮文), 연희정기(燕喜亭記), 지등주북기상양양우상공서(至鄧州北寄上襄陽于相公書), 응과목시여인서(應科目時與人書), 송구책서(送區冊序), 장군묘갈명(張君墓碣銘), 마설(馬說), 후자왕승복전(朽者王承福傳)은 1만3000번씩 읽었고, 악어문(鰐魚文)은 1만4000번 읽었다. 경술년 늦여름, 백곡(栢谷) 늙은이는 괴산 취묵당(醉?堂)에서 쓰노라"는 독수기(讀數記)가 전한다.
여기에는 그가 평생 1만 번 이상 읽은 글 36편의 목록이 적혀 있는데, 사기 '백이전(伯夷傳)은 무려 1억(億 지금의 10만을 가리킴)3000번을 읽었다고 기록돼 있다.
김득신은 백이전을 가족의 장례식에서도 읽었을 정도로 영조 때 영의정인 이의현이 쓴 도곡집을 보면"80이 넘은 김득신은 딸을 먼저 여의었다. 장례 행렬을 따라가는 그의 손에는 백이전이 들려 있었다. 또 아내를 잃었을 때 친척들이 '아이고, 아이고'라고 곡을 할 때도 그는 백이전의 구절을 읽었다"고 전하고 있다.
김득신을 이런 독서법을 통해 본래 우둔함과 어리석음을 딛고 아주 때늦은 나이지만 59세에 과거에 급제해 당대를 대표하는 시인의 반열에 올랐다.
그의 묘비명에는"재주가 다른 이에게 미치지 못하다고 스스로 한계 짓지 말라. 나처럼 어리석고 둔한 사람도 없었을 것이지만 나는 결국에는 이루었다. 모든 것은 힘쓰고 노력하는 데 달려 있다."
무더운 계절이 가고 언제나 그랬듯 가을이 성큼 다가 왔다.
주마등처럼 지나갈 이 가을, 독서삼도(讀書三到)를 몸소 실천하면 어떨까?.<증평/한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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