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번째 영화 ‘화장’ 만드는 임권택 감독, 욕망에 찌든 삶 속 순수한 아름다움·갈망 다뤄


임권택
영화란 세상살이에 대한 임권택 감독은 한국영화의 산증인이라 할 만하다. ‘두만강아 잘 있거라’(1962)부터 달빛 길어올리기’(2010)까지 모두 101편의 영화들을 만들며 대한민국의 변화상을 스크린에 포착했다.

짝코’(1980) 같은 영화에선 여전히 이어지는 한국 전쟁의 비극을, ‘만다라’(1981)에선 현대사의 질곡과 구도자의 삶을, ‘천년학’(2002)에선 한국적인 미학의 표본을 제시하기도 했다.

반세기를 한국영화와 함께한 임 감독이 또다시 도전장을 내밀었다. 102번째 영화 화장이다. 지난 2004년 이상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김훈의 동명 원작을 바탕으로 했다. 욕망에 찌든 질펀한 삶 속에 깃든 순수한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을 다룬 영화다.

임권택 감독은 4일 부산 센텀시티에서 열린 화장의 제작보고회에서 기대와 어려움이 교차한다고 말했다.

김훈 선생의 문장이 주는 엄청난 힘, 박진감, 그런 걸 영상으로 담아내는 작업은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매체가 다르다는 점에서 그 힘이나 박진감, 주인공의 심리를 영화로 드러낸다는 게 어렵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임 감독의 이런 생각만큼 화장은 복잡한 마음의 결을 가진 소설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50대 중반, 오 상무의 마음을 쫓아가는 이야기다.

원작자로서 제작보고회에 참석한 김훈은 오 상무라는 인간은 세속성의 일상에 찌들어서 타락한 인간이다. 조직에서는 유능하다고 인정받지만, 그는 타락할 대로 타락했다. 한국사회에서 전형적인 인물이고 우리 주변에 이런 사람은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순수한 미에 대한 열망이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오 상무는 복잡한 성격을 가진 캐릭터라고 작가는 부연했다.

여자의 찬란하고 아름다운 생명을 묘사하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인간의 생로병사가 구별되는 게 아니라 그게 한 덩어리가 되는 것, 또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이 생로병사와 같이 전개되는 상황을 그리려 했습니다. 결국, ‘화장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게 중요한 소설입니다. 이런 보이지 않는 것들을 눈에 보이게끔 삶의 전면으로 끌어올리는 게 영상화의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김훈 작가의 해석에 비춰 화장은 임 감독이 그동안 해왔던 사실주의 계열의 영화와는 조금 다른 지점에 서 있는 작품이다. 한 남자의 들끓는 마음을 세밀하게 관찰해야 하기 때문이다. 임 감독에게는 새로운 도전이라 할 만하다.

여자를 향한 남자주인공의 마음결, 마음의 상, 이런 걸 따라가면서 영상화할 수 있다면 제가 지금까지 해온 영화와는 다른 영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소설이 가진 엄청난 힘을 영상으로 담아내야 하는데, 주인공의 마음의 결을 섬세하게 잘 따라가서 어떤 감정을 끌어내고 싶습니다. 평소 살면서 드러내기 부끄럽고, 감추고 살고 싶은 그런 마음 안의 상들을 영화로 잘 드러냈을 때 영화적 성과도 크리라 생각했어요. 잘못되면 욕을 바가지로 먹을 것 같고, 잘하면 칭찬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워낙 큰 과제에서 열심히 해보겠습니다.”(웃음)

남자주인공 오 상무 역은 만다라’(1981), ‘안개마을’(1983), ‘태백산맥’(1994), ‘축제’(1996), ‘취화선’(2002) 등에서 이미 손발을 맞췄던 안성기가 맡았다.

안성기는 이상문학상 수상 당시 작품을 읽었다. 당시 이 작품을 영상으로 옮기기에는 어렵겠지만, 만약 가능하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주인공 역할을 하면 나이도 나랑 비슷하니 좋겠다고 상상했다. 그런 상상이 현실이 돼 벅차다고 말했다. 임권택 감독은 아직 시나리오가 완성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영화가 마무리된 뒤에야 비로소 시나리오가 완성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권택이라는 영화감독은 영화촬영을 딱 끝났을 때, 비로소 시나리오가 완성됩니다. 김훈 선생의 화장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들어가서 지금부터 내 색깔을 찾아내고, 김훈 선생의 담아낸 작품 세계 안으로 깊숙이 천착해 들어갈 겁니다. 지금 어떤 빛깔의 영화가 찍힐 것 같으냐는 질문에는 대답할 길이 없고, 끝나고 제 영화를 보고, 그제야 내가 이런 말을 하려고 했구나라는 생각이 드러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화장은 영화계의 명가 명필름에서 제작한다. 현재 시나리오 작업 중이며 올해 중 캐스팅을 완료해 12월께 촬영에 들어가 내년 3월에는 마무리할 예정이다.

임 감독과 김훈 작가의 말을 종합하면 화장은 오 상무의 마음을 따라가는 작품이 될 듯 보인다. 그렇다면, 102번째 영화를 찍는 거장의 마음은 어떤 상()을 보일까.

영화란 살아낸 세월의 체험을 영상으로 담아내는 것 같아요. ‘화장은 나이만큼 영화를 찍어낼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작품인 것 같습니다. 젊었을 때의 순발력이나 패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세상살이에 대한 사려 깊음은 담을 수 있어요. 저에게 있어 102번째 영화란 그런 것들을 담아낼 수 있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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