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사랑의 유효기간은 3년이라 했던가. 그러니 ‘사랑’이라기보다는 ‘정’으로 살기 마련인 것이 결혼생활이다. 가슴 두근거리게 하던 남편은 언제부턴가 밥 해주기 귀찮은 아저씨가 됐고, 바람에 날아갈 듯 가냘프고 수줍던 아내는 잔소리 많은 동네 아줌마로 변해 버렸다. 이쯤 되면 “애 때문에 산다”는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이병룡(54·서원대 생물교육과 교수)·박주미(50·청주 미주치과 원장)씨 부부도 그랬다. 이들은 ME 청주협의회의 18대 대표 부부다. 서울대 선후배 사이로 만나 1990년 결혼한 이들 부부가 ME 주말 교육을 받은 것은 지난 1996년이었다. 각자의 삶에 치여 부부 사이가 마냥 권태롭게 느껴지던 결혼 7년차. 부부는 선배의 추천으로 ME의 문을 두드렸고 답을 찾았다. 결혼한 지 20년 넘은 지금까지 그들이 신혼처럼 살고 있는 이유다.

“남편이 가자고 해서 별 기대 없이 마지못해 따라갔는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어요. 교육을 받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이 손을 잡아줬는데 연애 시절처럼 느낌이 새로웠지요. (박주미)”

ME(Marriage Encounter)란 부부일치 운동을 뜻한다. 1958년 스페인의 가브리엘 칼보 신부가 청소년 문제 해결을 위해 부부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깨닫게 되면서 시작됐다. 충북지역에는 고 이한구 신부(천주교 청주교구)에 의해 도입, 1984년 첫 교육이 열렸다. 최근까지 149차의 교육이 진행됐고 3000쌍의 부부가 참가했다. 13개 주제 아래 부부간의 대화를 통해 더욱 풍요로운 결혼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교육을 받은 후 이들 부부는 이전과는 다른 방법으로 대화하기 시작했다.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상대의 감정을 헤아리려 노력하게 된 것. 그러자 상대의 좋은 부분들이 새롭게 보였다.

이씨는 “ME는 전문 상담 프로그램은 아니다. 오로지 발표 부부의 이야기를 듣고 두 사람끼리만 얘기하게 한다”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부부 문제를 다른 사람에게 노출시키지 않고 스스로 대화를 통해 해결점을 찾아가는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ME 청주협의회의 주말 교육은 1년에 6∼7회 진행된다. 21∼22쌍의 부부가 청원군 보혈선교수녀원 교육관에 모여 13개의 주제 아래 2박3일 동안 교육을 받게 된다. 매회 세 쌍의 발표 부부와 발표 신부 한 명이 참가자들을 돕고 있다.

이들 부부는 ME 주말 교육을 받은 이듬해인 1997년부터 발표 부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활동비도 전혀 없이 16년간 꾸준히 봉사를 계속하는 이유는 참가자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며 느끼는 감동 때문이다. 남들 앞에서 자신들의 사례를 발표하는 경험은 이들 부부가 오랜 시간 흔들리지 않고 결혼 생활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더욱 더 잘 살아야겠다는 책임감도 생긴다.

“저희 부부가 사는 모습을 발표하고 부부 간에 겪은 체험들을 남들 앞에서 이야기하려니 쑥스럽기도 했어요. 그런데 교육에 참여한 부부들이 기적처럼 변화하는 모습을 보니 큰 보람이 들더라고요.(박주미)”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어놓고 왔던 부부도 여럿 있었다. 그 중 절반의 부부는 다시 예전처럼 가까워졌지만 갈등의 골이 너무 깊어 더러 이혼을 막지 못하기도 했다. 잉꼬부부라고 소문난 사람들이 정작 와 보니 배우자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고 고백하기도 하고, 70대의 노부부가 수료 후 자신의 아들·며느리를 교육장에 보내기도 한다.

천주교 신부에 의해 시작된 것이지만 결혼 5년차 이상의 부부라면 누구에게나 개방돼 있다. 실제 교육에 참가하는 부부도 20∼30% 이상이 비신자들이다. 심지어 교회 목사나 결혼하지 않은 수녀, 스님도 교육장을 찾는다. 신자들의 실제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이들 부부는 이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 본다. 그동안 ME가 부부일치·부부사랑을 중심으로 한 아름다운 가정을 만드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면 이제는 사회의 생명경시 풍조, 청소년 문제 등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는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이씨는 말했다. 

“최근의 많은 사회적 문제들의 근본에는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부부의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미래는 가정에 있고, 가정의 중심은 부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미래는 부부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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