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일(극동대학교 언론홍보학과 교수)

  KBS가 수신료 인상에 사활을 건 듯하다. 지난 10일 오후 KBS는 임시 이사회를 열어 현재 월 2천5백 원인 수신료를 4천원으로 인상하는 방안을 의결했다. 다음날에는 길환영 사장이 직접 기자회견장에 나와 33년째 수신료가 묶인 데다 최근 광고수익까지 줄어 창사 이래 최악의 재정난에 처해 있다며 수신료 인상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때마침 정부에서도 ‘창조경제 시대의 방송산업발전 종합계획’을 발표하며 수신료 인상을 주요 정책과제로 제시함으로써 KBS에 힘을 실어주었다.

  현행 수신료는 1981년 책정된 이래 한 번도 오른 적이 없다. 그간의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터무니없이 낮은 수준이다. 당시 자장면 한 그릇이 천이백 원이고 지하철 요금은 이백 원이었다. 신문 구독료가 월 사천 원에서 지금은 4배 가까이 올랐다. 결국 부족한 재원을 충당하기 위해 광고수익에 의존하다보니 시청률 경쟁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간 수신료를 현실화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03년에는 수신료 인상에 대한 논의가 내부적으로 제기되었으나 경영 합리화가 우선이라며 이사회 차원에서 논의를 잠정 보류시킨 바 있다. 또 2007년에는 방송위원회에서 수신료 인상을 가결하여 국회 상임위원회에 올렸으나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의 반대로 좌절되었다. 지난 18대 국회에서는 수신료를 삼천오백 원으로 인상하는 방안에 여야가 상당 부분 합의했으나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또 다시 무산되었다.

  수신료 인상은 필요하지만 그만큼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에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국민들이 납득할만한 충분한 근거를 제시하고 차근차근 설득해 나가야 한다. 그런데 이사회 내부 구성원들조차 설득하지 못한 상황에서 여당 추천 이사 7명만 참석하여 강행 처리하고 말았다. 불참한 이사들이 수신료 인상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이들은 전부터 KBS의 공영성 강화를 위해서는 수신료 인상을 통해 광고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다만, 국민들을 납득시키기 위해서는 보도의 공정성과 제작 자율성 보장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사회에서 의결했다고 해서 수신료 인상이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안을 검토한 후 의견을 첨부해 국회에 넘기면 상임위원회와 본회의를 거쳐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는 어느 것 하나 통과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더군다나 요즘 같은 불황에 준조세나 다름없는 수신료를 60%나 인상하겠다는 것은 국민정서상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런데 왜 그렇게 무리수를 두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의결 과정의 절차적 문제가 발목을 잡을 가능성만 높아진 셈이다.

  KBS의 셈법대로라면 수신료를 계획대로 인상하면 전체 재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7%에서 52%로 오르고 대신 광고가 차지하는 비중은 40%에서 22%로 낮아진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단순한 산술적 계산일뿐이다. 정작 KBS는 구체적으로 광고를 어떻게 줄여나갈 것인지에 대한 아무런 방안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또 광고 비중을 줄인다고 해서 KBS의 공영성이 절로 회복되는 것도 아니다.

   KBS가 말하는 ‘수신료의 가치’는 무엇인가? 단지 광고를 대체할 수 있는 경제적 가치는 아닐 것이다. 진정한 가치는 그동안 잃어버린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있다.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항상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모든 국민들에게 유익한 공공서비스 방송으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면 국민들도 KBS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에 합당한 비용을 기꺼이 지불할 것이다. 날로 치열해지는 방송 경쟁과 광고침체로 줄어드는 수익을 수신료 인상으로 메꾸겠다는 발상은 수신료의 소중한 가치를 짓밟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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