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훈 (충북 생생연구소장)


 

 

갑오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에는 모든 일이 잘 되고 복 받기를 기원하는 덕담을 나눈다. 매년 반복되는 일이지만 결코 지침이 없다. 그만큼 복에 대한 열망이 크다. 복의 종류가 여러 가지지만 재물과 권력에 대한 욕구가 가장 큰 것 같다. 왜냐하면 온통 화제나 관심이 그곳에 쏠려 있음을 보기 때문이다.

 

언론에 보도되는 기사 중 대부분이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다투는 것들이다. 여야가 싸우는 것도 그렇고, 권력의 핵심인 청와대는 물론 여야 각 당내에서의 갈등도 모두 누가 얼마나 권력을 차지할 것인가의 싸움이다. 어차피 경쟁 사회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갈등은 불가피하지만  우리들의 관심은 지나친 감이 있다.

 

며칠 전 5.16 혁명 주체세력의 일원인 김재춘 전 국정원장이 운명을 달리했다. 생전에 별로 부각을 받지 못했지만 우리 역사의 한 획을 긋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분이다. 김재춘 전 국정원장은 5.16혁명주체로 국정원장, 국회의원을 역임해 권력 면에서는 누릴 만큼 누린 분이다. 김포에 땅도 많아 재산도 많이 있었다. 그에 대한 정치적 평가가 어떻든 인간적으로는 멋있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서울대학에 막 입학한 해에 서울대생이라는 이유로 그 분과 식사를 한 적이 있다. 당시 다섯 식구가 방 두 개짜리 집에서 살고 있던 나에게는 남산 밑에 있는 그분의 집은 너무 으리으리하였다. 당시 군사독재정권타도를 외치며 학생 시위가 한참이던 시기라 정권 실세에 대한 반감이 있었는데 사는 모습을 보니 심사가 뒤틀려 조용히 밥을 먹고 나와야 할 자리인 줄 알면서도 유신체제에 대해 조목조목 따졌었다. 한참을 갑론을박을 하다가 답변이 궁해지자 그분이 당에서 준 홍보논리는 여기까지인데 더 이상은 가진 것이 없어 답변을 못하겠으니 내가 진 것으로 하고 이만 밥이나 먹자고 했다. 그 정도 권력자라면 젊은 대학생이 그렇게까지 버릇없이 덤비는데 뭐라고 호통을 쳐도 될 터인데도 허허하고 물러나는 것이 의외였다. 그러던 중 군에 있던 그분의 아들이 더운 여름에 찬 것을 베고 자다가 입이 돌아가는 병에 걸린 일이 있었다. 권력자의 아들이 그렇게 되어 군관계자들의 걱정이 컸다. 그러나 그분은 아들이 잘못한 것인데 어쩌겠냐며 아무런 질책도 하지 않아 당시 군 관계자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던 일이 있었다. 권력을 가졌지만 그것을 남용하지 않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했던 많은 분들이 권력을 행사하는데 조심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3대 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에서 근무를 한 경험으로 볼 때 권력은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무상하다. 한 때 청와대에서 정권 실세로 세도를 날리던 사람들 대부분이 정권이 끝난 후 끝이 안 좋았다. 권력을 더 많이 휘두른 사람일수록 자리에서 물러난 후 대가가 더 컸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이 순간의 명예를 위해 그렇듯 온갖 권모술수를 쓰면서까지 권력을 차지하려는지 모를 일이다.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물불을 안 가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렇게 얻은 권력으로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묻고 싶다. 자신의 명예욕인가 아니면 진정으로 그 힘을 이용해 사회에 좋은 일을 하려고 하는가? 진정으로 섬기려는 사람들보다는 권력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이 권력을 쟁취하는데 더 적극적이고 물불을 안 가리는 것 같다. 경제에서만 아니라 정치에서도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것이 진리인 것 같다.  

 

세상에는 권력을 쟁취하는데 모든 것을 걸고 있는 인간적으로 형편없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다고 믿는다. 그렇지 않다면 이 세상은 악취가 나 살기가 어려울 것이다. 어렵게 모든 돈을 기부하고 떠나는 분들의 이야기나 익명으로 거액을 기부하는 손길에 대한 기사들은 이 사회에 아직도 희망이 있음을 보여준다. 언론도 청와대의 권력투쟁이나 지저분한 정치 얘기에 너무 많은 지면을 할애하지 말고 좀 더 아름다운 삶의 현장에 관심을 가져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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