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일 (극동대학교 언론홍보학과 교수)

  얼마나 가슴 설레는 여행길이었을까? 오랜 고3 수험생활을 마치고 대학생으로서의 첫발을 내딛게 된다는 기대로 가득 찼던 그 여정이. 아직은 낯설고 어색한 새내기들에게 먼저 다가와 말 걸어주는 선배들, 앞으로 함께 공부하게 될 과 친구들과의 서먹한 첫 만남. 여럿이 부대껴야 하는 불편한 숙소에서 하룻밤을 함께 지내고 다소 짓궂은 선배들의 권유에 억지로 마신 술 한 잔도 웃으며 넘길 수 있는 것은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 대한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17일 부산외국어대학교 신입생들도 그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여행길을 떠났다. 그런데 이들의 첫 여행은 예상치 못한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열린 경주 마우나 리조트의 체육관 지붕이 그동안 쌓인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 것이다. 체육관 안에서 행사에 참여한 5백여 명 가운데 10명이 미처 피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고 말았다. 설마 하는 안일한 생각이 빚어낸 너무도 어이없는 사고가 아닐 수 없다.

  세상 어디에 귀하지 않은 목숨이 있겠는가만 이번 사고가 유달리 안타까운 것은 미처 자신의 꿈을 피우지도 못한 채 떠나버린 꽃다운 젊음 때문이다. 장래희망이 항공사 승무원인 미얀마어과 신입생 박소희 양은 흔치 않은 언어를 전공하는 것이 취업에 유리할 것 같아 전공을 선택했다고 한다. 박 양은 그날 저녁 필리핀 출장 중이던 아빠에게 ‘아빠, 보고 싶어요’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는데 그것이 가족들과의 마지막 작별인사가 되고 말았다.  

  베트남어과 신입생 윤체리 양의 꿈은 온가족이 자유롭게 대화를 하는 것이었다. 8년 전 아빠와 재혼한 새엄마가 베트남 출신이라 의사소통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아랍어과 신입생 고혜륜 양이 합격자 발표 후 학교 인터넷 카페에 남긴 합격 소감도 보는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같은 과 신입생 강혜승 양은 외교관을 꿈꾸었고, 일본 전문가가 되고 싶었던 비즈니스일본어과 신입생 박주현 양은 고질적인 허리 디스크로 아파하면서도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했다 변을 당했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멀리 경기도 파주에서 온 미얀마어과 신입생 김정훈 군까지 6명의 신입생이 이번 사고로 숨졌다.

  미얀마어과 학생회장이었던 양성호 군은 사고 직후 체육관을 탈출했지만 미처 나오지 못한 후배들을 구하기 위해 다시 현장으로 뛰어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건물이 추가 붕괴되면서 결국 빠져나오지 못하고 숨진 채 발견되었다. 학과 집행부로 후배들을 챙기기 위해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했던 태국어과 부학생회장 김진솔 양과 베트남어과 재학생 이성은 양도 희생되었다.

  또 안타까운 것은 현장에서 학생들과 함께 있다가 사망한 이벤트업체 직원 최정운 씨의 죽음이다. 사고로 희생된 9명의 학생들에게는 합동분향소가 차려지고 국민들의 관심이 쏠린 반면 최 씨의 빈소는 쓸쓸했다. 경성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그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고향 대구에 극단을 차려 꿋꿋하게 버텨왔다. 극단 운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일이 없을 때는 대리운전을 하기도 하고 이벤트 회사의 하청을 받아 영상촬영과 편집일을 했다. 이날도 오리엔테이션 행사 촬영을 위해 현장에 갔다가 변을 당한 것이다.

 


  구사일생으로 살았지만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은 학생들은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아픔과 고통을 겪어야 할까. 대학에 몸을 담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또 그만한 또래의 자식을 둔 아비로서 도무지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자신의 꿈을 피우지도 못한 채 떠난 이들의 넋을 어떻게 달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내야 하는 유족들의 아픈 마음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이 땅에 다시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그래서 더 이상의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밖에는 없을 듯하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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