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영

흰 눈에 파묻힌 청보리싹이 눈을 뜨네 부케 같은 하얀 꽃을
파냄새가 피웠네 유채꽃이 노랗게 손을 흔들며 한 겨울 여기
서 나라고 하네 가파도로 떠나면서 거센 파도를 만났고 눈보
라 몰아치는 마라도로 건너갈 때 뭍으로는 돌아가지 않을 궁
리만 했네 고래 같은 우울이 마음속에 헤엄치고 있어도 모슬
포 부둣가에 무심한 물고기를 자질구레한 생각처럼 떼 지어
오가네 수선화를 좋아하시던 추사선생이 성근 파뿌리 같은
수염을 기른 채 대정마을 세한도에 서 계시고 나는 떠나야할
밤바다를 겉눈질 하다 바다 쪽 왼뺨이 얼어붙었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