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복(흥덕새마을금고 이사장)

요즘 여객선 세월호 사고 때문에 온 국민이 슬픔에 잠겨있다. 집단적 우울증이다. 고달프고 험난한 굴곡의 역사를 무수히 지나온 우리민족에게 어찌하여 또다시 이런 씻을 수 없는 슬픔이 닥친단 말인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서해 페리호 사건이 얼마나 됐다고 또 생때같은 젊은 아이들을 그것도 연안에서 수장 시키는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참담하다. 아! 아! 우리는 언제쯤 이런 후진적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을꼬...

 언제나 그렇듯 모든 일들이 사후 약방문처럼 되풀이된다. 누군가는 책임을 지고 물러나고 누군가는 감옥을 가고, 그리고 우리는 머지않아 바닷속에 가라앉은 세월호의 잔영처럼 이일을 잊을 것이다. 누군가 말하길 신이내린 인간의 성정 중에 가장 큰 장점이자 약점은 망각하는 일이라고 했다. 결국 가슴에 상처 또한 긍정도 부정도 아닌 상태로 남의 일 인양 망각의 늪으로 사라져 갈 것이다.

 우리 인간은 잘해야 100년 이내의 삶을 산다. 장구한 세월을 사는 나무에 비하면 그야말로 짧은 세월이다. 어려서는 삶에 대한 자의식이 형성되기 전이라서 스스로에 대한 평가를 할 수 없지만, 우리 삶의 대부분은 생존을 위한 직업전선에 매몰돼 있다. 삶을 영위해 간다는 것은 인생이라는 큰 궤적으로 볼 때 기억 속에 이런저런 상처를 입는 일이다. 그래서 산전수전을 겪는다고 하는 것이다.

 기쁨의 환희로 몸을 떠는 것과 슬픔의 나락에 떨어지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 극과극의 거리로 느껴지지만, 우리 오감이 느끼는 감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기뻐도 슬퍼도 눈물이 나는 까닭이다. 사람들은 기쁨에 들떠 있는 동안은 시간이 빠르게 느껴질 뿐 아니라 쉽게 잊히지 않고 그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되길 염원한다. 반대로 슬픔은 어떤가. 세상모든 것이 끝날 것 같은 절망의 극단에 휘둘려 막다른 골목으로 자신을 몰아넣는다. 그 위태한 절망의 끝자락에 퇴로가 없다고 결론을 내릴 때 종종 자살이라는 비극을 선택한다. 어찌 보면 삶과 죽음의 경계가 종이 한 장도 안 되는 것처럼 미미해 보이지만 그 간극은 헤아릴 수조차 없을 만큼 크고 넓다.

 19C 서양의 세기말 염세주의 영향과 3.1 운동 실패로 인하여, 방황하는 젊은 지성인들이 좌절과 절망의 혼돈 속에 휩쓸리던 때처럼, 지금의 우리가 집단적 체면에 걸리듯 절망에 빠져 있다. 좌절은 또 다른 좌절을 낳는다. 정신의학과 전문의에 따르면 하루 종일 비관적인 내용과 절망어린 언론보도를 접하다보면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돼 정상행동에서 벗어난 망상, 신경과민 등과 같은 이상증세를 유발할 수 있으며 이는 정서적으로 패닉상태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  

 유족이 아니라도 우리 국민 모두는 지금 사고의 참담함에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감정의 쓰나미가 그렇지 않아도 스트레스 노출이 심각한 우리국민에게 육체적이나 정신적으로 많은 영향을 주게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따라서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관계당국은 국민의 집단적 우울증과 같은 정신적 폐해를 예방할 대책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또 유족을 비롯한 피해 당사자들에게 심리치료는 물론 각종 지원을 위한 범정부적 협의체 구성이 시급한 실정이다.

 


 화재로 피해를 당했다 해서 불 없이 살 수 없고, 수해를 당했다 하여 물 없이 살수 없는 것처럼, 이제 우리는 차분히 이성을 회복해야 한다. 이번 사고를 반면교사로 삼아 보다 충실한 재난 안전대책 마련에 한 치의 소흘 함이 있어선 안 된다. 차재에 국가 재난 시, 민.관 통합 안전기구설치 및 공조, 대응 시스템 확충 등 사회 안전망관리 점검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사고는 예고 없이 온다. 그러므로 항시 유비무환의 자세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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