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복(흥덕새마을금고 이사장)

요즈음 우리는 구성원 간 신뢰(信賴)가 무너지고 사회 전반에 각종 불신(不信)이 만연(蔓延)한 병리적(病理的) 현상이 심각하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허구인지 종잡을 수 없이 혼란스럽다. 이렇게 된 배경(背景)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터이지만 무엇보다도 세월호 참사에 따른 정신적 트라우마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그간 방송을 통하여 여러 차례 보도된 바와 같이 ‘가만히 있으라’는 말만 믿고 침몰하는 배안에서 하염없이 구조를 기다리다 변을 당한 어린 학생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우리 국민은 숨이 막힌다.
 해난 사고 시 구조에 일차적 책임(責任)을 지고 있는 해경이 현장에 도착해서도 위급(危急)에 처한 학생들을 구하기 위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는가 하면, 자신들의 과오(過誤)를 덮기 위해 관련기록 까지 은폐(隱蔽)하려 했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세월호와 직간접 관련이 있는 유병언 전 회장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핵심주체인 검.경은 서로에 대한 불신으로 핵심정보를 공유(共有) 하지 않는 잘못을 저질렀으며, 그간 엄청난 수사 인력을 투입하고도 사건을 종결짓지 못해 국민에게 깊은 실망감만 안겨줬다. 또 최근엔 유병언 전 회장 사망과 관련하여 봇물 터지듯 각종 유언비어(流言蜚語)가 난무(亂舞), 국민 불신을 더욱 부채질 하고 있는 실정이다.
 언론 역시 일단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사실에 근거한 책임 있는 보도가 생명인 공영방송이 객관적 진위(眞僞) 여부를 따져보지 않고 대중적 포퓰리즘에 편승한 선정적 보도로 일관, 사건의 본질을 왜곡(歪曲)시킴은 물론 불필요한 문제를 양산(量産)해 방송의 기본적 신뢰를 져버린 행위 또한 가볍다고 볼 수 없다.
 잊을만하면 총기 사망사고가 터지는 군대도 예외가 아니다. 군대는 사기(士氣)가 생명이다. 그러기에 엄정(嚴正)한 군기 확립도 매우중요하다. 그러나 아직도 근절되지 않고 있는 선.후임병 간 구타, 성폭력, 가혹행위 등, 우리 군은 관심병사에 대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근본적 해결을 외면한 채, 전가의 보도처럼 안보상 군사기밀(軍事機密)이라는 이유로 땜질식 미봉책에 급급, 가장 폐쇄적(閉鎖的) 집단이 돼 버렸다. 이처럼 투명하지 못하고 고립된 집단에 어떻게 사랑하는 자식을 믿고 보낼 수 있겠는가.
 정치권에 대한 감정 역시 좋을 리 만무하다. 어려운 때일수록 여.야를 떠나 정치가 앞장서 국민의 아픈 곳을 만져주고 사회통합을 위한 새로운 국민정서 함양과 사회적 병폐(病弊)를 치유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함에도 불구, 오히려 불신을 조장하는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선거를 치를 때마다 올바른 선거문화(選擧文化) 정착을 위한 노력 없이 정파적 이해와 지역감정에 휘둘려 각종 흑색선전(黑色宣傳)이 판을 친다. 오직 이기고 보자는 막가파식 행태가 정치 혐오증(嫌惡症)을 불러왔다.
 어느 한 곳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이렇게 불신이 팽배(澎湃)해진 책임이 정부와 무관하지 않다. 여론전문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신뢰지수(信賴指數)가 바닥이라고 한다. 오랫동안 누적(累積)된 불신의 골이 더욱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이 신뢰하지 못하면 그 어떤 것도 약발이 먹히지 않는 법이다.
 사건 사고가 터질 때마다 관계법령을 만든다 대책을 마련한다 요란스럽게 부산을 떨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별반 나아진 것이 없다. 한마디로 ‘태산 명동 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 이다.
 우리 주변에서 사건사고는 항상 일어날 수 있는 개연성(蓋然性)이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같은 사고가 반복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국민은 불안하고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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