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바세코의 아이들' 감독 김경식 청주대 영화학과 교수

▲ 김경식 청주대 영화학과 교수

 

크고 맑은 눈망울을 가진 어린 아이들은 갱과 창녀를 꿈꾼다. 깡마른 팔다리에 기생충으로 불룩한 배를 가진 아기들은 너무 환해 슬픈 웃음을 웃는다. 이들은 오후 3시에 제공되는 한 끼의 식사로 주린 배를 채우며 하루 하루를 버텨 나간다.

가난과 무기력에 찌든 이곳은 필리핀의 빈민촌인 바세코. 이들의 참혹한 일상을 필름으로 담아 낸 다큐멘터리 영화 ‘바세코의 아이들’이 지난 14일 전국 극장에서 개봉하며 잔잔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명량’과 ‘해적’의 흥행 파도가 거세게 몰아치고 있는 상황에서, 독립영화로서 고무적인 기록을 낳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지역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김경식(55·사진) 청주대 영화학과 교수가 이 영화의 제작과 감독을 맡은 것으로 알려져 많은 이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김 교수는 “영상 컨텐츠를 활용한 선교 방안에 관심을 갖고 있던 중 세계 3대 빈민지역 중 한 곳인 바세코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영화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인터뷰 외에는 연출된 장면이 거의 없다. 카메라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촬영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영화는 지난 2011년 12월 크랭크인해 만 3년이 넘는 시간을 거쳐 완성됐다. 일반 관객들에게 처음 선보인 것은 지난 5월 ‘11회 서울국제사랑영화제’ 미션초이스 부문에 초대받으면서다.

74분 상당의 이 영화는 WMC(세계선교공동체) 신승철 선교사의 헌신적인 사역으로 변화되고 있는 바세코 주민들의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이곳의 주민들은 대부분 쓰레기를 줍거나, 관광객을 대상으로 매춘을 하고, 장기를 판매하며 살아가고 있다.

김 교수는 “필리핀은 6.25전쟁 당시 참전국 중 가장 먼저 달려와 우리를 도와준 국가다. 이곳의 어려운 이들에게 지금은 우리가 은혜를 갚을 차례”라며 “5000원이면 20여명의 바세코 아이들을 먹일 수 있다”고 말했다.

많은 이들의 사랑이 모아져 영화가 탄생됐다. 김 교수의 지인들이 너도나도 조금씩 쌈짓돈을 내놓았고, 많은 스텝들이 무보수로 동참했다. 아내 손혜경(54·행복한 가정 세움 연구소장)씨가 모아 놓았던 비상금은 영화 제작의 종잣돈이 됐다.

영화는 1부 ‘구제(2011년 1차 촬영)’와 2부 ‘나눔의 기쁨(2013년 2차 촬영)’으로 구성된다. 1차 촬영본은 CTS 기독교 방송을 통해 먼저 선보였고, 이후 놀라운 일들이 잇따랐다. CTS인터내셔널이 바세코 어린이들과 결연을 맺고 1년 간 후원한 것이다. CTS를 통해 모금된 4800만원의 후원금이 지역에 전달됨으로서 200명의 어린이들이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됐다. 또한 국제로타리 3740지구 회원들이 제빵 설비와 이동식 차량 구입비를 지원해 바세코 주민들이 먹을 빵을 직접 생산해 낼 수 있게 했으며, 청주 상당교회에서 헌금으로 모은 470만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지인들과 함께 한 달에 30만원씩 2년여간 영화에 출연한 오가와 가족에게 후원금을 보내줬다. 덕분에 이들은 영양실조에서 벗어나고 교육도 받을 수 있게 됐다. 최근에는 호주의 한 재활센터 원장이 100여명의 교육비를 지원키로 했다.

그는 추후 바세코 주민들이 자립해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3부를 촬영할 수 있는 날을 고대하고 있다. 영화에 등장한 바세코의 청년들이 얼마 전, 빵집을 창업했고, 몇몇 청소년들이 조성훈 관장으로부터 복싱 훈련을 받고 있다고 하니 3부가 선보일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올해 말에는 청주대 치위생과, 패션디자인학과, 간호학과, 영화학과, 태양광에너지공학과, 환경동아리 학생들이 이 지역을 찾아 재능기부를 할 예정이다. 패션디자인학과 학생들은 재봉 기술을 지도하고, 간호학과 학생들은 성에 무지해 원치 않는 임신을 하는 청소년들에게 피임법 등을 알려주려 한다. 극장 개봉이 끝난 후에는 공동체 상영을 시작하고 각 교회, 학교 등을 대상으로 2차 배급을 할 계획이다.

“제가 청주 석교초에 다닐 때 야구부에서 활동했는데 미군 부대에서 원조해 준 밀가루 부대로 만든 유니폼을 입고 야구를 했던 생각이 나요. 꿀꿀이죽과 옥수수빵을 먹기도 했고요. 그러던 것이 불과 40여년 전인데 아무도 그 시절을 기억하려 하지 않죠. 이제 우리가 주위를 돌아보고 어려운 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또 절망 속에서도 밝은 미소를 잃지 않는 아이들의 모습을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이 보고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글/조아라·사진/임동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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