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 때아닌 바람이 불고 있다. 이른바 ‘반기문 대망론’이 그것이다.
새정연 권노갑 상임고문이 ‘반기문 유엔사무 총장 영입’ 문제를 제기하면서 반기문 대망론은 세력을 확장해가고 있다.
여당 쪽에서도 딱히 대권 주자를 찾기 힘든 상황을 감안할 때 반기문 카드가 유혹적인 것은 분명하다. 해서 친박계 의원들이 ‘반기문 대안론’을 들고 토론까지 벌인 까닭은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이다.
반기문 총장이 한창 주가를 올리며 차기 대선의 ‘대세’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박근혜 정부 이후 국민들에게 크게 어필할 ‘상품’이 많지 않다는데 있다. ‘고만고만하다’는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문재인 의원이 줄곧 대선후보 지지율 1,2위를 차지하곤 했지만, 국민들에게 그들 또한 ‘눈에 익은’ 인물일 뿐이다. 요즘말로 ‘신상’인 반기문이 그래서 어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난달 한길리서치가 벌인 차기 대선후보 지지율 조사에서 반기문 총장이 39.7%, 박원순 서울시장이 13.5%, 문재인 새정연 의원이 9.3% 나왔다. 그동안 수위를 점했던 박 시장과 문 의원의 3∼4배나 많은 지지율이다. 그러고보면 여야를 불문하고 반기문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그들 나름대로의 ‘셈법’에 골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반 총장은 충북 출신이다. 음성에서 태어났고, 충주고를 졸업했다. 이쯤에서 충북도민들은 우리 지역에서 대통령을 내는 것 아니냐는 희망을 가질 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연·혈연·학연으로 대별되는 ‘섹티즘’에서 그는 자유로워 보인다. 그동안 정권 획득을 두고 피터지게 싸웠던 영호남의 정치인들과 그는 거리를 두고 있는 셈이고, 그의 불분명한 ‘정체성(Identity)’이 그를 또 이롭게 하고 있는 듯하다. 여야가, 보수와 진보가 모두 그를 ‘자기 편’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부연하자면, 참여정부에서 외교장관을 거쳐 유엔사무총장을 하게 됐으니 야권은 그를 ‘범야권’으로 생각할 것이고, 보수색 짙은 공직사회에서 잔뼈가 굵었으니 여권은 그를 ‘보수주의자’로 여길 것이다. 이를테면 ‘양날의 칼’을 모두 장착한 셈인데, 국민 여론이라는 게 또 ‘그때 그때 달라요’임을 유념해 보면 그 양날의 칼이 되레 자신에게 치명상을 입힐 흉기가 되기도 하는 법이다. 정치권에서 한때 신드롬을 일으켰던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그랬고, 신선하고 신뢰가는 인물로 여겨졌던 안철수 의원이 그랬다. 일단 한 ‘자연인’이 ‘정치인’이 되면 국민들의 판단은 가혹할 정도로 냉정해지곤 한다.
정치권 또한 그가 여든 야든 어느쪽 노선을 취하게 된다면 그를 놓친 상대쪽에선 십자포화를 날릴 것이다. 그게 ‘정치판’이다.
반 총장 쪽은 ‘대망론’에 대해 “사실과 다르”고 “총장직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관련보도 자제를 요청했다. 거꾸로 읽으면 대선 불출마 선언의 행간은 안 보인다. 기대가 되면서 우려도 된다. 그래서 정치권의 ‘흔들기’가 멈춰지고, 그가 역사에 남는 총장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우리는 2016년 12월 31일, 그가 유엔사무총장직을 훌륭히 수행해 국제사회로부터 박수를 받고 돌아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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