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경찰이 총책인 대규모 보이스피싱 조직이 적발됐다. 자신이 보이스피싱 수사를 한 경험을 활용해 범행을 주도했다고 하니 충격적이다. 광주지검 형사2부는 19일 조직원이 100여명에 이르는 사상 최대 규모의 보이스피싱 조직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중국과 필리핀 등에 '콜센터'를 차리고 저축은행을 가장해 대출해 줄 것처럼 속여 거액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일일 환전금액이나 범행기간 등을 고려하면 피해액은 400억원, 피해자는 수만명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피해자는 대부분 급한 돈이 필요한 서민일 수밖에 없다. 사기에 속아 4000만원을 날리고 음독자살을 기도한 피해자도 있다고 한다. 서민을 울리다 못해 삶을 포기하게까지 만드는 이런 악질 범죄를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지 안타깝다.
달아난 총책은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에서 보이스피싱 수사를 했던 전직 경찰이라고 한다. 그는 자신이 경찰관으로서 수사한 피의자 3명을 조직원으로 끌어들이기도 했다. 보이스피싱 수법과 관련 전과자들을 잘 아는 수사 전문가가 자신의 경험을 살려 아예 범행에 나선 것이다. 이러니 순진한 피해자들은 교묘한 수법에 쉽게 속을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중국 해커로부터 저축은행 서버를 해킹해 대출을 거절당한 명단을 입수해 범행에 악용했다. 피해자에게 전화해 "다시 심사해보니 대출이 가능하다"고 속여 인지대나 보증보험료 등 명목으로 적게는 수만원에서 많게는 1억원까지 가로챘다. 신용도가 낮거나 담보가 없어 대출이 여의치 않은 서민에게는 대출해 줄 수 있다는 이들의 속임수가 너무도 쉽게 통했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경찰 조직에 몸 담았던 사람이 국민을 등치는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에 한숨만 나온다. 이것도 모자라 이들로부터 돈을 받고 조직원의 수배조회를 해준 경찰관도 있다고 하니 이런 경찰에 국민의 안전을 믿고 맡겨도 되는지 모르겠다.
보이스피싱 범죄는 피해 사례가 끊이지 않고 언론에 보도될 정도로 기승을 부리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1~6월 접수된 피싱사기 피해 건수는 1만3380건으로 1년전 보다 34.1% 많아졌고, 피해액은 886억원으로 87.7%나 늘었다. 이중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586억원(5795건)으로 121.2%나 증가했다. 피해금 환급률은 11.9%에 그쳐 사기에 속은 뒤 돈을 되찾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사기수법이 갈수록 교묘해지는 데 따른 것이다. 보이스피싱 등 금융사기는 본인이 우선 주의해서 걸려들지 않도록 해야 하지만 범죄가 날로 지능화되는 현실에서 그 예방을 개인에게만 맡겨놓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이번 범행만 해도 해외에서 전화했지만 피해자 휴대전화에는 '1588'로 시작하는 전화번호가 찍혀 사기의 의심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당국은 진화하는 금융사기 수법을 따라잡지 못하는 모습이다. 이들은 정부가 발간한 '보이스피싱 피해 방지대책' 문건도 새로운 범행수법 개발에 역이용했을 정도다. 보이스피싱 같은 금융사기로 절망하는 서민이 더는 없도록 실효성 있고 강력한 근절대책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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