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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 완장위세와 갑질
풍향계 - 완장위세와 갑질
  • 동양일보
  • 승인 2015.01.12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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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수 길(논설위원 / 소설가)
 

완장은 지정 된 업무수행을 위해 착용하는 팔띠다. 그 팔띠에는 책임과 권한이 동시에 부여되지만, 당연히 책임이 우선이다. 권한은 말 그대로 업무수행을 위한 제한적인 권리다.

 지난해는 꼴불견 완장패들이, 설친 탓에 세상이 시끄러웠다. 말띠해의 국운상승 기대는 무너졌다. 정치는 죽(粥)을 쑤고 경제는 곤두박질 쳤다. 불신과 분노에 찬 민심도 삭막해졌다.

 국제정세가 분쟁과 대결로 치닫고 경제가 불황으로 내몰린 탓에, 우리경제도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지만, 그게 국내정치가 죽을 쑤고 민심이 불신의 구렁에 처박힐 이유는 아니었다. 초고속 경제성장을 따르지 못한 의식의 미성숙현상이 빚어 낸 천민의식이 정확한 이유다.

 보릿고개에 허리끈 졸라매고 살던 시절의 우리는 순박했다. 부족해도 나눠먹고 나눠쓰고 품앗이를 하며, 상부상조를 법 이상의 미덕으로 알고 살았다. 그러나 지금은 변했다. 변해도 참 치사하게 변했다. 나눔 보다 걸태질이 먼저고, 준법 보다 탈법궁리가 먼저다. 신분상승을 위해선 못 할 일이 없고, 조금이라도 우월한 위치에 서면 만인을 발아래 꿇린 듯한 착각에, 분수없이 설치는 게 바로 그 가증한 천민의식이다.

 책임과 의무는 내던지고 직권을 특권으로 오인/남용하는 게 완장질이고, 좀 더 가진 자가 덜 가진 자를 괴롭히는 가학증발작을 ‘갑질’이라 한단다. 결국 완장질이 갑질인 셈이다.

 완장질이거나 갑질이거나, 그런 행위를 저지르는 자들에게는 자제와 양보, 역지사지나 배려와 같은 따뜻한 어휘는 관심 밖의 일이다. 다만 강자 앞에서는 한 없이 비굴하고 약자 앞에서는 한 없이 잔인한 동물적 본능에, 허세와 과시욕만 있을 뿐이다.

 지난해에는 하나님을 빙자한 사교(邪敎)의 교주가, 그 여파에 희생 된 세월호 유족회 일부 임원이, 그들과 패를 지어 ‘나 국회의원인데..’ 아무데서나 신분을 과시한 함량미달의 의원이, 승객의 목숨을 담보로 사복을 채운 ‘해피아’를 비롯한 숱한 마피아들이, 품성을 갖추기 전에 높은 의자를 차지한 재벌 3세가, 안하무인의 막말로 국가원수와 국민을 모독하고 국정의 발목을 잡은 정치꾼들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제자들 몫의 연구비를 떼먹은 일부교수나, 부하에게 몹쓸 짓을 한 일부장교들이, 심지어는 나이 많은 아파트 경비원을 폭행 한 젊은 입주민이 소위 갑질에 수훈을 세워, 국민들의 공분(公憤)을 자아 낸 주인공들이었다.

 올해는 양띠해라 조용할까 싶었는데, 갑질의 전염엔 방역대책이 없나보다. 새해 벽두부터 안하무인의 기고만장한 천민의식 발동이, 장소와 계층을 초월해서 만연하고 있다. 주차장 알바생을 무릎 꿇리고 호통 친 모녀, 백화점 남직원의 뺨을 때린 왕녀고객, 비행중인 기내에서 비즈니스석 안 준다고 난동으로 유명세를 과시(?)한 가수, 수습사원을 잔뜩 부려먹고 탈락시킨 기업, 견습 직원에게 최저임금의 1/10을 지급하고도 오히려 은전을 베풀었다는 유명 디자이너, 거침없는 막말로 부하직원을 모욕한 지방경찰청장. 꼬투리만 있으면 물고늘어져 호통치는 의원들의 갑질이 가뜩이나 편치 못한 국민들의 속을 긁고 분노를 촉발시켰다.

 공분(公憤)의 표적이 된 이들이 여론의 화살이나 법의 제재를 받고 사죄/반성을 한다지만, 그게 갑질의 종지부가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 사회 구성원들 모두가, 천민의식을 극복하고  허세와 과시욕 을 버리지 않는 한, 누군가가 또 발작을 일으킬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완장질이나 갑질은 특정인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우월자의 갑질에 당한 약자가 엉뚱한 곳에서 보복심리가 발동, 더 약한 자를 괴롭히는 갑질의 장본인이 되고, 비교우위에 있던 자도, 처지가 바뀌면 더 우월한자의 갑질에 고통 받는 연쇄반응으로, 일종의 도미노현상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한 때의 실수로 과오를 범한 자에게 마녀사냥식으로 정도 이상의 매질을 가하는 군중심리도 또 다른 갑질의 하나다.  그러니 시민의식이 정립되지 않고 천민의식이 난무하는 사회에선 모든 사람이 잠재적 가해자요 피해자인 셈이다.

 9백여 년 전, 만적은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고 종의 종자가 따로 없다’며, 노비의 신분을 털고 ‘사람답게 살자’고 난(亂)을 일으켰다. 그 만적의 평등사상이 일찍이 뿌리를 내렸더라면, 뒤늦게 받아들인 민주주의의 기본을 제대로 이해하고, 자유와 권리 이전에 책임과 의무를 먼저 생각하는 역지사지의 배려를 체득했더라면, 서로가 피해자가 되어, 갑질의 횡포에 상처 받는 분노와 불신의 풍조가 이리 심하지는 않았을 텐데.... 의식의 충전 없이 배(腹)먼저 채운 게 탈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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