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선(본사 상임이사)

         유영선(본사 상임이사)

연휴에 우연히 보게 된 한 방송사의 특집 프로그램이 눈길을 잡았다.
연예계 50대 남자스타 4명이 20대 딸과 함께 하루를 보내면서 부녀 관계를 돌아보는 관찰 예능프로그램이었다. 아빠와 딸은 세상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하는 사이. 연예인들은 아빠로선 몇 점이 될까, 흥미를 유발하는 프로였다.
그러나 TV에서 보여지던 연예인의 모습과 집에서 아빠로 보여지는 모습은 사뭇 달랐다. 딸과 함께 있는 자리가 어색해 눈을 마주치지 않는 아빠도 있었고, 딸과의 대화가 오직 강아지를 매개로 한 이야기뿐인 부녀, 딸과 3마디 이상을 이어가기 힘든 아빠도 있었다. 표현에 서툰 아빠들과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딸들의 모습이 리얼하게 비쳐지면서 이 프로는 많은 이들로부터 공감을 얻었다.
한동안 육아프로그램이 대세를 이루면서 젊은 아빠들의 좌충우돌 육아현장이 안방의 인기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 배우 송일국 씨의 삼둥이와 이종격투기 선수인 추성훈 씨의 딸 사랑이는 꾸미지 않은 순수함으로 연예인의 인기를 능가할 정도로 사랑을 받고 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부모의 마음은 아이들 앞에서 아빠를 슈퍼맨으로 만든다. 아이들의 즐거움을 위해 아빠는 무슨 일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시기가 지나고, 아이들이 점점 자라 자기세계를 갖기 시작하면 서로의 관계가 소원해진다. 아이들은 힘든 사춘기를 겪고, 아버지는 일에 찌들려 살다가 사추기를 겪을 때쯤이 되면 공통분모를 찾기 어려워진다.
방송에서 보여지는 연예인의 부녀들도 그래보였다.
특히 50대 한국 남자들은 자녀 양육에서 소외되어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잘 모르고, 표현방법도 서툴다. 게다가 부녀지간은 이성이기 때문에 딸이 성장하면 공통분모를 찾기가 더 힘들다고 한다. 오죽하면 학계에서조차 ‘장년층 아버지와 딸의 관계’라는 주제는 잘 안 다루는 연구대상이라고 할까.
아마도 대다수의 장년층 아버지들은 그럴 것이다.
어릴 땐 조르르 달려와 품에 안기던 아이가 훌쩍 커서 반항기에 접어들면 만감이 교차한다. 살갑던 관계는 싸늘한 냉각기에 들어선다. 한 번도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는 공부를 해본 적이 없는 아버지들은 이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무뚝뚝하고 권위적인 아버지가 되고 만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이번 TV 프로그램에서 보여졌던 한 부녀처럼, 딸이 아버지에게 가까이 가고자 기다렸건만, 바깥 일에 매달리느라 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아버지. 그는 급기야 딸로부터 ‘고 1, 2 때는 아빠를 정말 미워했다’는 고백을 듣는다.
아버지 노릇을 하기가 참 힘든 세상이다. 가족과 함께 하지 못하는, 그래서 가족으로부터 소외돼 가고 있는 장년층 아버지들은 우리 사회의 문제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아버지다워야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해야 아버지다울 수 있는가.
‘딸바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다정하고 자상한 아버지가 좋은 아버지인가, 좋은 옷 많은 용돈을 주며 풍족하게 키우는 것이 좋은 아버지인가.
주위를 둘러보면 우리 주위엔 아직도 아버지로서 서툰 사람들이 많다. 힘으로만 군림하려는 폭력적인 아버지,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아버지,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방임형 아버지, 특히 자신의 부모세대처럼 엄격한 아버지도 못되고, 다감한 엄마흉내도 낼 수 없는, 그래서 아직도 자신의 역할을 찾지 못하는 아버지.
아버지는 누구인가. 아이의 가치관을 바로 잡아주고, 사랑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며, 아이가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삶을 이끌어 주는 멘토이자, 인생에서 태풍이나 산사태를 만났을 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기둥같은 사람이다.
아버지의 권위가 무시되어서도 안되겠지만, 지나친 엄격함으로 벽을 만드는 아버지도 안된다. 부모와 아이는 함께 걸어가는 존재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가족간에도 표현하는 사랑, 실천하는 사랑이 진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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