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논설위원 / 충북대학교 아동복지학과 교수)

최은영(논설위원 / 충북대학교 아동복지학과 교수)

언젠가부터 갑질이란 단어를 지속적으로 듣게 된다. 어감도 나쁜 단어가 계속 회자되는 것은 그 만큼 인권침해와 특권의식이 만연해 있다는 의미이리라. 더 심각한 일은 일부 특정직무와 관련된 특권도 아니고 그냥 돈이 많아서 혹은 소비자여서, 있어서도 안 되는 특권을 부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점이다. 갑질 뉴스가 나올 때 마다 전국민이 흥분하면서 몇 달 동안 그 사람 흉보는 일에 열을 올린다. 그들만 잘못하고 있을까?

예전에는 부모님과 길을 지날 때 청소하는 분을 보면, “저런 분들 덕분에 길이 깨끗한 거다. 감사하자”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요즘은 “너 공부 못하면 저렇게 더러운 거 치우면서 산다. 정신 차리고 공부해” 라는 근거도 없고 몰상식한 언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렇게 사회화된 아이들이 어떤 성인으로 클 지는 뻔하다. 강남 아이들 사이에서는 아버지의 연봉이, 아파트의 평수가, 어머니의 자동차 배기량cc가 자신들 지위의 잣대로 변신한 지 오래다. 연봉과 평수, 배기량 숫자가 낮으면 그 아이들을 무시할 권리가 있는 냥 무례해 진다. 인류역사에서 신분제가 없어진지가 언젠데 우리는 왜 인권을 무시하고 신분을 만들어 가고 있단 말인가.

인권이 무엇인가? 말 그대로 “사람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인간답게 살 권리”이다. 그런데,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억눌리고 분노하고 좌절하고 원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 결과가 때로는 폭력으로 때로는 자살로 이어진다. 뉴스틀기가 겁난다. 그렇다고 세상돌아가는 얘기를 아주 멀리할 수는 없어서 심호흡 한번 하고 뉴스를 튼다. 종종 세상이 미쳐가는 구나.. 이런 생각을 혼자 한다. 그리고 제정신에 세상 살아가는 것이 앞으로 점점 힘들어 지겠구나 긴장한다.

한국사회는 권위주의 발전국가를 거쳐 민주국가로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공교롭게도 권위주의 발전국가 시기에 우리는 압축성장을 하였다. 그러면서 성장에 취해 권위주의 국가와 그 병폐에 대해 깊이 성찰하지 못하고 지금에 이르렀다. 권위주의 국가는 노동권도 사회적 보호체계도 시민의 단결권도 모두 무시했다. 경제성장을 위해서라면 다른 모든 정책은 멈추어도 좋았고 경제발전 지상주의 앞에서 공공성과 투명성, 사회적 신뢰와 정의 등은 우리 삶에서 멀리 있었다. 심지어 압축성장과 급격한 사회변화 가운데 기층 국민이 기댈 사회시스템이 없는 상황에서, 가족중심주의와 일그러진 가족이기주의적 부정이 관행으로 굳어졌다. 사회에 안전망이 충분하지 않으니, 결국 가족은 반(反)공동체적인 행태를 충실히 수행해서라도 각자의 성공과 생활을 위해 복무하는 도구가 된 것이다. 가족 성매매조직단, 가족 보험사기단 등은 그러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가족에게 걸렸던 그 동안의 과부하와 기대는 용돈주지 않으면 가족을 엽총으로 살인하는 사태에 이르게 된다.

 


발전하기 바빴는데 공공성과 사회정의를 어떻게 따졌겠냐? 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발전의 열매를 상대적으로 고르게 나누던 시절에 체화하지 못한 원칙들이, 이제 극도로 양극화가 전개되는 시점에서 그래서 사회적 박탈감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은 이 시점에서 과연 지켜질 수 있겠는가? 다시 묻고 싶다. 우리는 결과를 향해 달리는 동안 과정에서 지켜야 할 것들을 지속적으로 무시하고 묻어버렸다. 국민총생산이 늘어도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될 수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전 세계적으로 눈에 띠는 교육열에 남부럽지 않은 인적자본 투자를 하고 있는 한국에, 신뢰와 협동, 공동체 지향 등을 의미하는 사회적 자본은 거의 형성되어 있지 않다. 사회적으로 의지할 데 없는 외롭고 이기적인 개인은 무한경쟁 속에서 남의 인격을 밟으며 자기만 살 궁리를 하도록 내몰린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권의식과 실천력인 듯하다. 일상적으로 최소한의 인권도 지켜지지 않으니, 사람들은 특권을 누리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닐까? 특권을 탐낼 필요가 없는, 인권이 일상적으로 실천되는 사회를 위해 각자의 위치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반성하고, 후손에게 어떤 사회를 만들어 주어야 하는지 함께 구상하자. 거창하게 얘기할 것도 없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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