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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누구인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누구인가
  • 장인철 기자
  • 승인 2015.04.09 18: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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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성가 그룹총수에서 비리의혹 연루 죽음 택해

초등학교 중퇴 후 자수성가 2조원 대 그룹 총수
2003년 자유민주연합 김종필 총재 특보로 정치 입문
2012년 국회의원 당선 후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 무효
이명박 정부 시절 자원개발사업 비리 의혹 검찰 수사
“결백하다” 억울함 토로 유서 남긴 채 9일 숨진 채 발견

(동양일보 서산=장인철기자) 성완종(64) 전 경남기업 회장이 9일 사망했다.
성 전 회장은 이날 오전 서울 강남구 청담동 자택에 유서를 남겨 두고 자취를 감춘 뒤 북한산 형제봉 인근 산 속에서 목을 매 숨져 있는 채 발견됐다.
성 전 회장은 이명박 정부 시절 해외 자원개발사업에 참여 과정에서 250억여원의 회삿돈을 횡령하고 800억원대의 사기 대출을 받은 혐의 등으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돼 이날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있었다.
성 전 회장은 11곳의 계열사를 거느린 2조원 규모의 대아그룹 회장으로 건설업계에선 유명 인물이었으나,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정치권에 입문한 2000년대 초반.
초등학교 중퇴인 성 전 회장이 기업인으로 성공한 과정은 그의 자서전 ‘새벽빛’을 통해 소개돼 있다.
충남 서산 해미가 고향인 성 전 회장은 초등학교때 아버지가 어머니를 내친 뒤 새어머니를 맞으면서 동생들과 함께 내쫓기는 신세가 됐다.
돈을 벌겠다며 서울로 올라간 어머니를 찾아 어린 동생들과 함께 무작정 상경, 가정부 일을 하던 어머니를 만난 뒤 낮에는 약국 심부름을 하고 밤에는 교회 부설학교에서 공부하며 억척 인생을 꾸려갔다.
남의 집 헛간에서 잠을 자고, 신문 배달과 휴지 수집은 물론 막노동까지 하며 생계를 이어가면서도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1974년, 성 전 회장은 100만원을 들고 고향으로 내려와 화물영업소를 차린 뒤 트럭중개업을 시작했다.
성 전 회장이 건설업계에 뛰어든 것은 1977년, 서산토건에 입사하면서다.
성실히 일하는 성 전 회장을 눈여겨보던 당시 최순기 사장이 성 전 회장에게 회사 인수를 권유, 서산토건을 매입했다.
회사명을 대아건설로 바꾼 뒤 플랜트 산업 설비 분야에서 토목주택까지 사업영역을 확장, 거침없이 성장하며 1993년 코스닥에 상장하기도 했다.
1996년에는 서울시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의 중?도매법인 ‘중앙청과’와, 온양관광호텔을 인수하며 사업 영역을 유통과 레저 분야까지 넓혀 갔다.
그러나 외환금융 위기에 부딪혀 경영난을 겪으면서 1999년 워크아웃을 신청, 3년만인 2002년 워크아웃에서 벗어나며 재기를 채근했다.
2003년 중견건설사로 한 때 대우그룹 계열사이기도 했던 경남기업 지분 51%를 확보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는다.
이후 계열사 11개를 거느린 자산 2조원 규모의 경남기업의 총수에 오르며 성공한 기업인으로 평가돼 왔다.
기업인으로 성공한 성 전 회장은 정치인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2000년 고향인 서산·태안 16대 총선에서 자민련 공천을 신청했으나 탈락한 뒤 2004년 17대 총선에서 김종필 자민련 총재 특보단장을 맡아 비례대표에 도전했으나 역시 실패했다.
이후 2008년 18대 총선에선 한나라당 공천을 희망했으나 공천을 받지 못하면서 정치와는 인연이 없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는 2012년 19대 총선에서 자유선진당 소속으로 출마, 4수 끝에 마침내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토록 꿈꿔왔던 정치인으로서 성공을 가로막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장학사업을 위해 설립한 서산장학재단이었다.
재단을 통해 기부활동을 한 것이 공직선거법에 저촉돼 2013년 대법원에서 당선무효형이 확정되는 바람에 1년여만에 정치인의 꿈을 접어야 했다.
기업인으로 돌아온 뒤 경남기업에 복귀했으나 전반적인 경기 침체와 가중된 적자를 감당하지 못하면서 심각한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 이명박 정부 시절 해외 자원개발사업 참여 과정에서 정부로부터 받은 성공불융자금을 횡령, 수백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 등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았으며, 9일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있었다.
그는 전날인 8일 기자회견을 자청, “나는 ‘MB맨’(이명박 전 대통령 측근)이 아니라 MB정부의 피해자”라며 “자원개발 융자금을 횡령한 적이 없다. 유독 경남기업만 특혜를 받았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항변했다.
이명박 정부 인수위원회 자문위원으로 참여한 인연 때문에 ‘MB맨’으로 불리는 데 대한 해명과 그로 인해 표적수사 대상이 됐다는 억울함을 토로한 셈이다.
그리곤 하루만인 9일 오전 “억울하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긴 뒤 자택을 떠나 산 속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관련기사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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