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자진사퇴론 확산·야당 해임건의안 압박 등 여론 악화

▲ 사퇴의사를 밝힌 이완구 총리가 21일 오전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 발코니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동양일보)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의혹을 받아온 이완구 국무총리가 20일 중남미 순방 중인 박근혜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박 대통령은 오는 27일 순방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직후에 이 총리의 사의를 수용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이 중남미 순방을 위해 출국 길에 오른 이후에도 국정수행 의지를 거듭해서 피력하던 이완구 총리가 21일 한밤중 전격적으로 사의를 표명한 것은 더 이상 악화되는 여론을 감당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성완종 파문'이후 점증하는 사퇴 압박 '쓰나미'에 저항하기 힘들었다는 분석이다.

무엇보다도 '친정'인 새누리당의 자진사퇴 압박이 결정적이었다는 분석이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당초 박 대통령이 남미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는 27일 이후 이 총리 거취에 대한 결론을 내릴 방침이었다.

하지만 이 총리의 해명과 반박이 거짓말 논란 등으로 비화되고 등 여론이 악화되자 조기 퇴진이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박 대통령 귀국 전에 이 총리에게 자진사퇴를 유도하기로 하고, 청와대를 통해 박 대통령에게 이 같은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새정치민주연합이 이르면 22일 해임건의안을 제출하겠다고 공식화하며 공세의 고삐를 죈 것도 이 총리에게는 상당한 압박이 된 것으로 보인다.

해임건의안이 상정됐을 때 야당 의원들이 전부 찬성하고 여기에 동요하는 일부 여당 의원들도 가세해 찬성표를 던진다면 이 총리는 헌정 사상 처음으로 해임건의안이 가결된 총리라는 '불명예'를 떠안게 된다.

결국 이 총리는 스스로 물러나는 게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새누리당이 4.29 재·보궐선거에서 전패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는 사실도 전직 새누리당 원내대표 출신인 이 총리로서는 적지 않은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 총리가 계속 '버티기'에 나서고, 4.29 재·보궐선거이 여당의 참패로 끝날 경우 이 총리는 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론까지 뒤집어쓰게 될 것이 명약관화한 상황이었다.

뿐만 아니라 '식물 총리'와 다름없는 처지에서 총리직을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국정 정상화를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 국정 운영을 조속히 정상화하기 위해 결단한 측면도 있어 보인다.

이 총리는 자신의 거취를 묻는 질문이 나올 때마다 "국정을 흔들림 없이 수행하겠다"면서 국정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자신이 결백을 주장하며 계속 총리직에 연연할 경우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박 대통령에게 결국 엄청난 정치적 부담을 주게 된다고 판단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이 총리로서는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충청 지역 여론이 자신에게 우호적이지만은 않았던 점도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웠던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자살 이후 이 총리 문제가 불거지자 이 총리의 지역구인 부여·청양 주민들과 성 전 회장의 과거 지역구인 서산·태안 주민들 사이에 갈등의 골이 깊어져 감정싸움을 빚는 양상까지 번지고 있었다는 후문이다.

이 총리의 고향인 청양군 비봉면 양사리 주민 이모씨는 "고향 출신이 총리가 돼 기대감이 매우 컸는데 '성완종 리스트'에 오르면서 사의를 표명해 너무 안타깝다"며 "총리 취임 이후 지역발전에 대한 주민들의 기대감이 컸는데, 이제 그런 기대감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고 전했다.

반면,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고향인 서산지역 주민들은 이 총리가 말 바꾸기를 계속했던 데 대해 불만을 토로하면서 사의 표명이 불가피했을 것이라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주민 박모씨는 "이 총리가 성 전 회장에 대해 '잘 모른다'고 말했는데, 이게 말이 되느냐"며 "계속 말 바꾸기를 하면서 발뺌하려는 모습에 '과연 그가 총리감이 되는 인물이었는지 모르겠다'는 지적이 많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에 충청 지역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최근 정부세종청사 앞에서 연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완구 국무총리는 총리직을 즉각 사퇴하고 검찰 수사를 받으라"고 촉구한 점도 이 총리에겐 엄청난 압박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 총리는 지난 2월 17일 공식 취임한 지 두 달여 만에 자리에서 물러나게 돼 사실상 역대 최단명 총리의 불명예를 안게 됐다.

이 총리는 사의를 표명한 20일까지 63일을 재임한 것으로 기록돼, 현재까지 재임 기간이 가장 짧았던 총리(총리서리 제외)였던 허정 전 총리(1960년 6월15일∼8월18일)보다 이틀이 짧다.<지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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