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논설위원 / 충북대학교 아동복지학과 교수)

최은영(논설위원 / 충북대학교 아동복지학과 교수)

봉건제와 신분사회가 무너지고 자본주의가 도래하면서, 인류는 다양한 과제와 씨름하며 현재의 사회를 일구었다. 상품처럼 되어버린 노동자의 신분, 사회가 강제하는 정년퇴직, 실업과 재해의 공포, 그리고 그로 인한 불확실성..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기초로 하는 재산권 절대의 원칙과 계약자유의 원칙 등의 시민법 원리가 기대와 달리 키워버린 경제사회적 불평등, 형식적 평등만으로는 노동자의 열악한 생활이 악화되기만 하는 현실.. 그에 따른 불확실성.. 더구나 후기산업사회로 진입하면서 새로이 보태진 위험들도 있다. 노동시장의 불안정성 증가로 기술훈련과 재취업이 중요해졌고, 불안해진 가족구조와 기능으로 가족구성원을 지원하는 사회서비스가 필요해졌으며, 다산다사(多産多死)에서 소산소사로 바뀐 인구구조 때문에 부양부담과 국가지속가능성이 사회적 화두가 되었다. 불확실성은 계속해서 커지고 있고 새로워지고 있다.
  인류는 이러한 경제사회적 변동에 대응하기 위해 탈상품화(de-commodification)를 기치로 하는 복지국가, 시민법을 수정한 사회법, 노령ㆍ질병ㆍ실업ㆍ재해에 따른 소득중단의 위험에 대처하기 위한 사회보장제도,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서비스체계 등을 만들었고, 국가의 개입과 공법적인 제한을 통해 공공복리와 사회적 안정을 추구해 왔다. 총체적으로 삶의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사회복지정책을 전공하는 학자들이 조명하는 현대사회와 복지의 기능은 위와 같다.
  정부는 복지예산을 계속 늘리고 있다고 주장하고, 실제 겉모습으로는 서구 복지국가가 가지고 있는 많은 제도들이 이미 한국에 도입되어 시행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한국은 현재 실업부조와 가족수당만이 없다). 그런데, 왜 우리가 체감하는 불확실성은 줄어들지 않고 있을까?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그야말로 불안감이 감도는 요즈음이다. 가족, 친지나 친구, 직장 상사와 동료, 주변사람, 불특정 다수를 가리지 않고 폭언과 폭력 및 인권유린이 난무하고, 불공정 거래와 부당해고, 임금체불 등 생계유지가 어려운 계층이 늘어나고 있다. 수명은 점점 길어진다는데 기댈 곳도 마땅치 않고, 현재도 힘들고 미래는 얼마나 더 힘들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불확실성이 우리나라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는 무엇일까? 소비억제와 내수침체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출산률 저하를 더 강조하고 싶다. 여성이 너무 목소리가 커져서 아이를 낳지 않으니 경제활동을 자제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고, 독신으로 사는 사람들이 문제이니 특별히 세금을 더 내도록 하자는 주장도 하며, 버스에 “아이를 낳읍시다” 스티커를 붙여야 한다는 참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분출하고 있다. 출산률 저하는 우리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나타난 증상이다. 따라서 문제의 원인구조를 파악하고 장애물을 줄여주기 위한 사회구조적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여성의 경제활동을 막는다고 자녀를 낳지는 않는다. 자녀양육에는 비용이 든다. 아주 단순히 생각해 보아도 말이 안 된다. 일찍이 호주의 인구학자인 맥도날드는 위험회피론(risk aversion theory)으로 저출산을 설명했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하에서 노동시장을 비롯하여 사회적으로 불안정과 위험이 증가하면, 개인은 위험과 불안정이 낮은 쪽을 선택하게 되는데, 이것이 자녀출산 대신 시장에서 경쟁하여 살아남는 쪽의 선택을 하게 한다는 것이다. 사실 새로울 것도 없다. 미래가 불투명한데, 어떻게 자녀출산이라는 미래에 대한 투자를 선택하겠는가?  
  이와 관련하여 최근에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복지재정 효율화 추진방안'은 우려스럽다. 개선되지 않고 있는 복지의 사각지대, 계속 반복되는 누리예산 편성위기 등 들려오는 소식은 우리의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다. 조속히 복지재원의 파이를 키우고 효과적으로 배분ㆍ투자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가 본격화 되어야 한다. 물론, 부정수급자와 보조금 횡령을 철저히 관리하는 것은 필요하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방안들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어서 문제다. 국민이 느끼는 불확실성을 더 높인다면 우리사회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어떤 증상들이 더 터져 나올지를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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