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동양일보 편집상무)

김영이(동양일보 편집상무)

충청출신 이완구 국무총리가 거짓말 자충수끝에 70일만에 물러나 최단명 국무총리로 기록됐다. 그의 불명예 사퇴는 충청권 맹주이자 차기 대권주자라는 입지도 앗아갔다.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에 이름이 적혀 있고, 그로부터 선거자금 3천만원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천신만고 끝에 오른 국무총리직이 하루아침에 날라갔다.

그런데 그를 물러나게 한 것은 단순히 ‘성완종 리스트’에 이름이 적혀서가 아니다. 또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에게서 3천만원을 받았다는 의혹 때문도 아니다. 본인이 돈 안받았다고 부인하고, 검찰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일국의 국무총리를 의혹만으로 사퇴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더욱이 청문회를 거치면서 망신창이가 돼 오른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데, 그런 의혹만 갖고서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하는 것은 그에겐 가당치 않은 일이다. 그렇다고 여론이 좋지 않아 그 자리에서 순순히 내려올 그 또한 아니다. 그런 그가 국무총리직을 내려놓았다. ‘이완구’라는 이름에 덕지덕지 붙은 부정적 이미지와 함께 말이다.

이 전 총리의 사퇴는 거짓말에 거짓말이 가져온 자충수이자 자업자득 산물이다. 그는 성완종 리스트에 자신의 이름이 있자 “성 회장과 친밀한 관계가 아니다”고 해명했다. 심지어 “19대 국회때 1년을 함께한 것 외에는 특별한 인연이 없고 사이도 썩 좋지 않았다”고도 했다.

그러나 그의 이같은 해명은 거짓으로 밝혀졌다. 검찰 수사결과 최근 1년간 210여차례 전화를 주고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이를 두고 노회찬 전 정의당 대표는 “그 정도면 거의 부부관계가 아니냐”고 비꼬았다.

이 전 총리는 국회에서 2012년 대선관여 여부와 성 전 회장과의 관계, 3천만원 수수 여부, 휴대전화 개수 등을 묻는 질문에 오락가락 답하고, 증거가 나오면 ‘잘 몰랐다’고 얼버무리기에 바빴다. 심지어 “성 전 회장이 목숨을 끊기전 이 총리를 원망했다”는 말을 전한 충남 태안군의회 부의장에게 12차례 전화를 걸어 “내가 총리니까 나에게 얘기하라”며 고압적으로 따져 물었다.

또 이 전 총리의 비서관은 전직 운전기사에게 회유전화를 해 불리한 상황을 뒤엎으려는 시도까지 했다. 그는 또 국회에서 돈 받은 증거가 나오면 목숨을 내놓겠다고도 했다. 이런 발언이 수사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다는 비난이 일자 “격해서 신중치 못했다”고 잘못을 인정했다.

이 전 총리의 오락가락 발언은 여기가 끝이 아니다. 압권은 ‘충청도 말투’ 탓으로 돌리는 황당한 발언이다. 그는 지난 16일 국회 대정부 마지막날 ‘거듭된 말바꾸기’ 지적에 대해 “충청도 말투가 그렇다. 곧바로 딱딱 얘기해야 하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보통 ‘글쎄요’ 하는게 있지 않느냐”고 답했다.

이 전 총리의 국회 인사청문회 인준이 힘들어질 것 같자 충청지역에는 수천장의 현수막이 내걸렸다. 성 전 회장이 조직한 충청포럼에서 내건 현수막의 내용은 대부분 이렇다. ‘충청 총리 낙마되면 다음 총선 대선 두고 보자’.

정치인들에게는 섬뜩했을 법한 이런 현수막이 도처에 내걸릴 정도로 지역에선 충청출신 총리 탄생을 한껏 기대했다. 흠결도, 문제도 많지만 그가 충청도 출신이라서 지지하고 현수막까지 걸어준 게 충청도 인심이다.

그런데 거짓말 시리즈가 충청도 말투 때문이라니 이런 배은망덕한 경우가 어디 있나. ‘말은 느려도 행동은 빨러유~~’. 충북도립대 조동욱 교수는 충청도의 느린 끝말이 정감있고 예의 바르고 착한 느낌을 준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그렇다. 충청도 말투는 비록 느리지만 더 간결하고 정확하다. 그래서 미학의 느림, 은인자중의 무게감, 따스함이 묻어 나오는 게 충청도 말투다. 개혀?(개고기 할줄 알아?), 갔슈(돌아가셨습니다), 그류?(그렇습니까)... 이 얼마나 정감 넘치는 말인가. 정치인중엔 경상도 출신의 YS(김영삼 전 대통령)가 ‘갱제(경제)를 살리자’고 했다면 JP(김종필 전 자민련총재) 역시 충청도 사투리를 ‘기맥히게’ 잘 썼다.

물론 충청도 말이 다소 모호하다는 점 인정한다. 상대가 대답하기 곤란한 뭔가를 부탁했을 때 많은 충청도 사람들은 ‘알았다’고 대답한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이 말을 해석하느라 상대의 머리는 헷갈릴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충청도 말투는 말하는 사람의 진의를 알아듣기 어렵다는 의미로 말한 이 전 총리는 분명 충청도 사람들을 욕되게 했다. 되레 그의 말이 ‘충청도 말투’가 아니라 ‘거짓말’이지 않나. 이 전 총리에게 이 말 전하고 싶다. 충청도말 하는게 부끄럽다면 경상도나 전라도말 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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