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동양일보 편집상무)

▲ 김영이(동양일보 편집상무)

장관(長官). 국무를 맡아보는 행정 각부의 가장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이다. 개각때 충북 출신이 없으면 지방언론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말이 있다. ‘충북 홀대론’이다. 그만큼 아무나 넘볼 수 없는 자리이고, 선택됐다는 그 자체만으로 개인은 물론 가문, 나아가 지역의 영광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관에게는 국정을 이끌 실력과 능력, 도덕성과 청렴, 정직과 양심이 요구된다. 장관이 청문회 대상이 된 것도 이런 것을 되짚어 봄으로써 국민 앞에 떳떳한 사람을 내세우자는 데 있다.

그런데 요즘 우리 지역에서 국민들을 실망시키는 상식밖의 일들이 벌어져 씁쓸하다. 그 주인공이 전직 장관이다 보니 혀 차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장관은 아무나 하나’라는 경외에서 이젠 ‘장관은 아무나 하는 자리’로 비아냥 대상이 됐다. 심지어 일국의 장관을 지낸 사람이 어찌 저 모양이냐, 그러니 나라 꼴이...라는 비탄이 비등할 정도다.

이명박 정부에서 마지막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을 지낸 청주 출신 S 씨. 당시 청문회 과정에서 쌀 직불금 부정수령 등으로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그는 차관 퇴직후 청원군수에 출마하려다 공천을 받지 못해 접었고, 장관에서 물러난 후 지난해 지방선거때는 충북지사에 나섰다가 중도사퇴한 경력이 있다. 지금은 내년 총선에 대비한다는 소문도 무성하다.

그런데 한 나라의 장관을 지내고 정치 꿈을 버리지 않은 사람이 고향에 내려와 고작 한다는 일이 ‘어떻게 장관 출신이 저런...’이라는 소리를 듣는다면, 수신제가치국평천하는 둘째치고 수신제가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보상을 노린 건물 신축, 산림훼손, 국유재산 매수 시도 등 일반인들은 감히 엄두도 못 낼 행위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는 도시개발사업이 추진중인 청주 사천지구에 포함된 자신의 땅 2필지 1281평에 올 봄 아들 명의로 건축허가를 받아 2층짜리 조립식 건물을 지었다. 지난 5일 도시개발사업구역으로 지정고시된 이 지역은 작년부터 도시개발사업이 추진돼 왔고 S씨 역시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터 였다. 그런데도 그는 건물이 헐릴 것을 뻔히 알면서도 신축을 강행했다. 알짜배기 땅을 환지받기 위한 얌체투기라는 비난을 받는 이유다.

또 하나, S씨는 건물세입자의 자재 보관 공간 확보를 위해 국가 소유의 산림을 백주에 불법 훼손하는 대담함도 보여줬다. 청주시는 S씨의 불법산림훼손 행위를 적발해 검찰에 송치했다. 이 과정에서 정작 행위자는 S씨가 아닌 그의 형으로 둔갑했다. 그리고 청주시는 S씨의 건물 앞 사거리 코너 횡단보도에 이상하게도 볼라드를 설치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이곳은 차량통행이 가능해져 등·하교 초등학생들에게 불편과 교통사고 위험을 안겨 주었다. 볼라드가 설치돼 있는 반대편과 형평성에 맞지 않고, 그래서 S씨에게 편의를 주려는 의도가 아니었냐는 지적이 일었다.

S씨가 이 사업지구내 일본인 소유 땅을 매수하기 위해 전직 장관의 ‘힘’을 이용했다는 정황도 있다. 이 땅을 국유재산으로 귀속시켜 매각하려면 6개월~1년이 걸리지만 한달여만에 일사천리로 처리됐다. S씨보다 매수신청을 먼저 접수한 추진위 측에 조달청 관계자는 처리결과를 알려주면서 ‘청장님 관심사항’이라고 친절하게 전했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던 추진위측은 자신들보다 늦게 S씨가 매수신청한 사실을 통보받고서야 ‘청장님 관심사항’의 의미를 알게 됐다.

전직 장관도 똑같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 자신의 재산을 보호하고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장관 출신이라 해서 역차별을 받아서는 안된다. 하지만 일반인의 상식에 반하는 언행을 했을때는 가혹한 비판을 감수해야 한다. 국정 권한을 위임받은 높은 자리에 올라 일반 국민과는 다른 길을 걸었기 때문에 국민들은 진중한 언행을 요구하는 것이다.

S씨가 개발예정지에 버젓이 건물을 신축하는 광경을 지켜 본 다른 지주들은 억장이 무너졌다고들 한다. 이런 상황에서 S씨는 건물 준공 기념 떡을 주위에 돌리는 뻔뻔함도 보여줬다. 한마디로 ‘염장’을 지른 셈이다.

떡을 가져 온 그와 추진위 관계자가 한참을 얘기하다가 끝내는 언성이 높아졌다. “장관이면 답니까. 주민들이 (당신을) 뭐라고 하는지 압니까. 장관답게 똑바로 하시오” 그래, 일국의 장관 출신이 어떻게 처신했으면 저런 소리를 듣고 망신을 당하나 가슴이 답답해졌다.

앞으론 설령 내각에 충북출신이 없다 해도 충북 홀대니, 무시니 하는 말을 하지 말자. 함량미달의 장관 배출했다고 좋아하느니 차라리 창피 안 당하는게 더 낫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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