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희 팔(논설위원 / 소설가)

▲ 박 희 팔(논설위원 / 소설가)

동네 가운데 우물터가 있다. 얼핏 보아서는 옆에 있는 논에 물을 대주는 관정 같이 보인다. 그런데 그게 한 때는 동네사람들의 식수를 대주던 우물이었다는 것이다. 그 증거가 될 만한 것으로, 아직 우물의 테두리라고 여겨지는 시커멓게 변색한 시멘트관이 아주 을씨년스럽게 남아 있다. 그런데도 동네에선 흉물처럼 보이는 그 우물터를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  읍내 고등학교(2학년)에 다니는 우길이가 이 점이 이상해서 하루는 아버지한테 물었다. “아버지, 동네우물이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 있었잖아요, 그게 집집이 모터지하수를 설치하면서 쓸모가 없어졌다며 흔적도 없이 묻어버렸잖아요. 그런데 왜 저건 그것보다 더 오래됐고 이젠 상수도까지 들어와서 보기도 싫은데 여태까지 그냥 둬요?” “그래 그게 없어진 것보다 훨씬 오래됐지. 내가 어렸을 때도 있었으니까. 그게 깊은 사연이 있단다. 그건 할머니가 잘 아신다. 할머니 시집오셨을 때 있었던 일이니까.” 그래서 우길인 또 할머니께 물었다. “그걸 우째 생각해 냈노, 내도 그걸 볼 때마다 지금꺼정두 속이 찡한 게 영 그렇다.” “뭣이 그리 찡해요?” “숭업이네 세 식구 땜에 그렇제.” “그거 얘기해 줘요.”
 할머니가 시집와 보니 우물이 동네 가운데 있는데 물 길러 갈 적마다 온 동네아낙들이 북적댄다. 20여 호 집집의 며느리며 말만한 여식들이다. 그러니 두레박 차례를 기다리는 아낙들의 수다 떠는 장소다. 두레박에서 흘러 떨어지는 물만으로도 흡족해서 싱싱하게 자라는 미나리꽝도 바로 앞에 있고, 잇대어 왕골논도 있다. 빨래터는 없다. 빨래의 더러운 때 구정물로 해서 우물물이 오염된다 하여 진작부터 금기돼 있어서다. 밥을 짓기 위한 쌀이나 보리쌀 등 곡식은 씻고 일어도 무방했다. 사람이 먹는 곡식의 물이니 괜찮을 성싶어서였는지 모른다. 집집이 삼시세끼 해먹는 밥이라 하루에 세 번은 물 긷고 쌀 씻으러 가야하고 이 외에도 필요에 따라 수시로 우물엘 가야 한다. 그런데도 물이 달리는 일이 없다. 항상 맑은 물이 맛도 좋다. 이러는 걸 유지하느라 3,4년을 주기로 동네남정네들이 우물을 퍼내고 새 물을 받는 이른바 우물 안 청소를 한다. 이게 동네 생기면서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물빛이 탁해지면서 맛도 찝찔하니 이상해졌다. 우물 청소한지 2년여밖에 되지 않는다. 온 동네가 수군수군 어수선하고 산란하다. 고사를 지내고 우물을 다시 푸기로 했다. 그러자면 건장한 남정네가 번갈아 한 명씩 양 팔과 양 다리를 우물 안 벽을 버티며 내려가야 한다. 그리곤 위에서 끈 매달아 내려주는 큼지막한 양철통을 받아 우물 안의 물이 바닥날 때까지 연거푸 물을 퍼 올린다. 그런데 세 번째 내려간 사람이 갑자기 ‘앗’ 하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더니 작업을 중단한다. 그리곤 그대로 꼼짝 않고 서 있다. 밖의 사람들이 뭐냐고 왜 그러냐고 소리쳐도 그대로다. 무슨 변고가 난 것 같아 장정 한 사람이 부리나케 내려가 그 사람을 안고 올라왔다. 올라와서도 그는 말을 더듬는 채 우물 안을 가리키기만 한다. 이상해서 담력 좋다는 장정이 내려가고 남정네 여럿이 우물 안을 초조히 내려다보고 있는데 잠시 후, “앗, 송장이다!” 하는 소리가 울려나왔다. ‘송장, 송장!’ 밖으로 나온 그 장정의 말이 사람송장이 엎드려 있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소린가. 모두가 협력해서 그 시신을 밖으로 끌어올렸다. 대여섯 살 난 아이의 시신이었다. 물에 불고 반 부패해서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다. 이 소식이 삽시간에 온 동네에 퍼져서 온 동네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근데 그때 숭업이 엄마와 아버지가 헐레벌떡 뛰어왔는데 숭업이 엄마가 다짜고짜 시신 위로 덮치며 대성통곡이다. “숭업이, 숭업이 우리 숭업이 왜 이리 죽어서도 복이 없느냐…?” 숭업이 엄만 벌써 반 미쳐 있었다. 숭업인 그러께 여름에 큰물에서 또래들과 헤엄치며 놀다 익사한 이 내외의 외동이다. “우물 안에서 10년만 있으면 용이 돼 승천한다는데 이게 웬일이란 말이냐?” 그리곤 온 몸을 이리저리 훑어보더니, “비늘과 날개가 반은 돋았네.” 하더니. “누구여, 누가 우리 숭업이 용이 못되게 파토 논 사람이, 우리 집안에 용이 나와서 남의 업신여김을 면할까 했더니 그게 시샘이 나서 훼방을 놓았구먼. 아이구 서러워 아이구 불쌍햐!” 이젠 정신을 잃고 숭업이 위에 포개져버리고 만다 그러니까 동네사람들은 그동안 사람의 송장물을 먹은 것이다. 이래서 동내우물을 새로 팠고, ‘반은 용이 됐다’는 숭업이 엄마의 울부짖음대로 이 우물을 ‘반용정(半龍井)’ 이라 붙였다. 숭업이 엄마 아버진 이후 한 달이 채 안된 어느 날 야반에 동네를 스스로 떠나곤 지금까지 소식을 모른다. 이로 인해 동네사람 어느 누구도 반용정을 없애자는 말을 꺼내는 사람이 없고 마을 회도 열어본 적이 없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