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직후 깊은 산 속의 마을에서 벌어지는 공포·배신

 

판타지 호러는 여름철에 잘 어울리는 장르다.

독일 도시 하멜른에서 내려오는 전설 ‘피리 부는 사나이’를 모티프로 6.25 전쟁 직후 지도에도 없는 깊은 산 속의 마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판타지 호러 영화로 만든 것은 신선한 시도다.

영화 ‘손님’의 큰 줄거리는 ‘피리 부는 사나이’와 비슷하다.

하멜른에 찾아온 나그네는 금화를 약속받고 마술피리를 이용해 마을의 골칫거리인 쥐들을 모두 없애주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는다.

‘손님’ 역시 떠돌이 악사 우룡(류승룡)이 낯선 마을에 들어서면서 시작된다.

우룡은 아들 영남(구승현)의 병을 고치러 서울로 가는 길에 쉬어 가려 인자해 보이는 촌장(이성민)이 이끄는 마을에 들어선다.

이 마을의 골칫거리는 쥐떼다. 우룡은 쥐떼를 없애보겠다고 나서고 촌장은 목돈을 약속한다. 우룡은 피리를 이용해 쥐떼를 쫓아내지만, 이후 마을 사람들은 돌변한다.

영화는 서양의 전설을 1950년대의 한국 상황에 잘 녹여낸다. 외부인에게 필요할 때는 매달리면서 쓰임이 다 하자마자 등을 돌리는 인간의 모습이 지금의 관객에게 주는 의미가 크다. 군중심리를 그려 나가면서 진정한 공포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장면들도 인상적이다.

순박한 떠돌이 악사 역의 류승룡, 두 얼굴의 독재자 역의 이성민, 신내림을 기다리는 선무당 역의 천우희, 떠돌이 악사의 아들 구승현 등 배우들도 제역할을 해냈다.

이 영화로 장편 연출에 데뷔한 김광태 감독은 “이 영화는 약속에 관한 영화”라며 “전쟁 직후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약속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세상인데 이를 생각해 봤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영화에서 아쉬운 것은 이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데 코미디, 공포, 판타지, 드라마 등 여러 장르영화에서 봤음 직한 요소들을 다량 끌어와 쓰면서도 제대로 조화를 이루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유머는 엉뚱한 곳에 심어져 웃어야 할지 망설여지고 공포영화로서 소름이 돋는 이유가 무서워서인지 징그러워서인지 혼란스럽다. 인물의 행동을 설득력 있게 설명해야 할 극적 코드들은 향후 이야기 전개를 위해 일부러 만들어 넣은 듯 갑작스럽다. 9일 개봉. 107분.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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