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둥이는 나를 향한 최대한 칭찬”

 

일제강점기가 저물어갈 무렵인 1945년 2월 28일 옥천군 동이면 세산리에서 삼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나이 70보다 해방의 기쁨을 안고 태어나 해방둥이가 거북하지 않고 좋았다. 내가 태어나고 해방이 됐으니 나는 복이 있다. 해방과 함께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물론 해방 전에도 어렵긴 매한가지였다. 해방의 기쁨을 만끽하기도 전에 먹고살기 바빴다.

김순구 열사가 옥천에서 독립만세를 부르다 일본 헌병에 체포돼 혹독한 고문 끝에 옥중 순국했다지만 나는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를 만큼 웃자라질 못했다.

옥천과 조치원, 강외면, 옥산면까지 횃불 만세시위가 벌어졌다지만 나는 횃불도 들고 나설 수 없었다. 이미 지나간 3.1운동을 비켜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저 좋았다. 사람들이 ‘해방둥이’라 불러줘서 좋았다. ‘해방둥이’는 나의 최고의 별명이고 나를 향한 최대한의 칭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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